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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Dec 22. 2022

2022/12/22

  밤새 눈이 쌓였다. 얕은 눈이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팥을 쑤시며 얼어붙은 길 때문에 절에 오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셨다. 동짓날은 밤이 추운데 옷은 따숩게 입었니. 어머니는 말없이 출근하는 나의 등 뒤에 대고 그리 말씀하셨다.

      

  걷는 내내 입에서는 커다란 김이 번져나갔다. 겨울이 언제 이렇게 깊어진 건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이 추운 날에도 매장 앞은 전국각지에서 찾아오신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무심코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어느 젊은 부모 하나가 어린 딸의 볼을 어루만지며 추위를 달래주는 모습이 보였다. 눈은 종일 내렸다. 눈이 쌓일수록 작은 도시는 고요에 잠겼다. 밤이 되도록 사람들은 계속해서 매장을 찾았다. 삼삼오오 누군가는 노모를 모시고 누군가는 어린아이를 안고.

  영감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혀. 안 그람 요 음식이 다 떨어져가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야 된당께. 그 을마나 미안허냐.”

  그렇게 영감님은 한 식당의 주방을 60년 넘게 지켰다. 에게는 소중한 사람과의 끼니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부러워졌다. 음식을 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한 끼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조금 늦은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팥죽이 있었다. 따뜻했다. 어머니는 그새 많이 드셨다며 드시지 않으셨다. 팥죽을 먹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과 가진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 오늘이 지나 밤은 짧아지고 낮은 길어질 것이다. 제 막 시작된 듯한 겨울이 벌써 끝나버린 것만 같 마음 어딘가가 서운해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이 식당을 찾아올까. 그들은 여전히 따뜻할까. 주방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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