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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Jan 20. 2023

2023/01/20

The Last of Us, 2023

  지구가 또 멸망했습니다. 으이그. 칠칠맞은 녀석 같으니. 그나마 이번에는 바이러스, 핵전쟁, 외계인 따위가 아닙니다. 머리를 좀 쓴 건지 곰팡이를 들고 왔네요. 뭐 그래봤자 감염자들이 하는 짓은 좀비이지만요. 원작 게임을 참 재밌게 한 기억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아직 한참 어렸을 적이었죠. 당시 저는 딸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했습니다. 사연이 좀 있었거든요. 거의 몇 년을 만나지 못했죠. 다시 만났을 때 아이는 많이 커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재잘거리는 말도 제법 하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안아 올린 아이는 저를 자꾸 밀어냈습니다. 제가 어색했는지 존댓말을 써가며 저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죠. 원작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를 플레이하던 때는 저에게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부녀가 되었고 아이는 전보다 더 많이 재잘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서먹한 부녀 사이가 돼버렸을 수도 있었는데. 이런 거 보면 저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놓쳐버린 순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옹알이와 아장거리는 걸음, 꺄륵거리는 예쁜 웃음, 그리고 아이를 아이답게 만들어 주는 모든 것들. 저는 어느 것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삶에 두 번째 기회라는 건 없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라고 믿었던 것들은 그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변명 같은 순간이었을 뿐이었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어내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저에게 라스트오브어스는 재밌으면서도 불편한 게임이었습니다. 이건 영화 같은 게임이었어요. 과거에 있었던 모종의 사고로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은 안티히어로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구군분투 하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이 뻔한 스토리가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아마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은 상태로만 머물러 있는 게 저뿐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이건 제가 좋아하는 원형이예요. 이런 식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거든요. '로건'이 그랬고 '만달로디안'이 그랬고 '용서받지 못한 자(1992)'가 그랬습니다.

 

  사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드라마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영화 같은 게임이란 말은 결국 영화를 흉내 냈다는 말이니까요. 그리고 흉내라는 말은 결국 클리셰 범벅이라는 결론이 나죠. 근데 그걸 다시 영상으로 옮긴다면? 세상 흔한 작품과 다를 바 없을 것만 같았죠. 그리고 이번에 보게 된 ep1은 어땠을까요? 예상대로였습니다. 게임 컷씬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구도와 익숙한 로그라인, 전형적인 캐릭터들. 뭐 하나 새로울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았습니다. 1화가 끝나자마자 2화가 풀리는 날을 검색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하긴 클리셰 범벅이면 뭐 어떻습니까. 클리셰가 클리셰가 된 이유는 그게 지겹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도 존나게 팔렸다는 뜻이니까요. 되지도 않는 허세에 빠져 지적질해 대는 것보다야 즐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비평을 가장한 비판질하느랴 재미를 놓치는 어리석은 짓. 이제 멈출 때입니다. 그건 당신이 장원영 화장법을 검색하거나 제가 차은우 코디법을 검색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니까요.


  오랜만에 즐겁게 기다리면서 볼 드라마를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 다들 글로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지만 언제나 삐딱선 타고 다니는 저로서는 이게 좋네요. 오랜만에 글을 써서 두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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