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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May 16. 2023

2023/05/16

  "오늘 비행기가 딜레이 될 것 같아요."

  "응? 무슨 말이에요?"

  "하네다요."


  나리타에는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녀는 공항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두 번째 퍼온 야끼소바를 마저 먹지 못하고는 접시 위에 남겨둔 채로 바라봤다. 그녀는 식사를 멈추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그사이 나는 잃어버린 전철 패스카드와 지난밤에 같이 걸었던 그녀의 옛 동네를 생각했다. 나리타에 커다란 밤나무가 있어요. 어제 그녀가 말했었다. 이맘때면 꽃이 가득 피어요. 그걸 오빠랑 같이 봤어야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스시집도 타코야키도 모두 나리타에 있어요. 지지고 볶고 온갖 난리를 치면서 보낸 젊은 시절의 기억들 전부 나리타였어요. 그 시간이 되도록 조식을 먹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작은 호텔의 작은 식당이었다. 조명은 어두웠고 커피는 맛이 없었다. 이내 직원이 다가와 조식을 정리할 시간이라며 안내를 해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무엇을 얼마만큼 알아야 한다는 것일까. 그녀를 만난 건 지난 했던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한 봄의 초입이었다. 어지러운 시기였다. 속상한 일을 많이 겪었던 나는 조금 지쳐있었다. 그녀는 당찬 사람이었다. 삶을 긍정했고 일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 대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루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즐거웠던 일과 속상했던 일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내가 하는 말들에 그녀는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었다. 갸루가 접은 종이학 같은 우스개 따위를 종일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었다. 잡담 따위가 무슨 특별한 추억이 된다고 호들갑을 떠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건 즐거운 순간이었고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사람이란 자고로 그런 사소한 걸 특별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에게 빠져드는 법이다.

  하지만 인연은 우리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다. 이건 서로가 상대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와는 관계가 없는 문제였다. 예를 들면 우리가 첫 데이트에서 나눠 먹은 딸기 케이크 같은 것이 그랬다. 우리는 인천의 어느 빵집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내가 고른 딸기 케이크를 보며 그녀는 사실 먹고 싶었던 건 치즈케이크였다고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는 딸기 케이크가 많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가 뭘 먹고 싶어 할지 고민하면서 그 딸기 케이크를 골랐으니 말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당연히 치즈케이크를 골랐을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니깐 인연은 그렇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데이트랍시고 찾아낸 예쁜 빵집에서 햇살이 드는 창가의 나무 탁자에 앉아 마음에 드는 사람을 향해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함과 동시에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애쓰는 상황에서 서로를 위한답시고 고른 케이크가 결국에는 서로 원치 않는 케이크가 되어버리는 것. 그런 것처럼 서로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조식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날씨는 좋아지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몸을 포개어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나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숙소를 떠날 때까지도 패스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오후가 되도록 해는 뜨지 않았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내내 흐린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전철 속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저들 중 대부분은 공항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일 거라며 나에게 말했다. 그녀가 나의 팔을 끌어안아 왔고 나는 그녀의 정수리에 볼을 기댔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그녀의 몸 내음이 나의 코끝을 스쳤다. 순간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이전 날만큼 많이 웃지 못하였다.

  공항에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마중하고 누군가는 떠나고. 공항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비행기를 띄우려 분주하게 일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마중하고 있었다. 무심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조금은 편해질까. 나도 이내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와의 세 번째 만남이 그렇게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풀었을 때 그렇게 찾았던 패스카드가 튀어나왔다. 추억의 부스러기라도 될만한 게 남을 모양이었다. 소파의 등받이를 세우고 몸을 누이고는 빗소리를 들었다. 창가를 내려다보니 길가에는 우산 몇 개가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건 무엇을 얼마만큼이나 알아야 한다는 걸까. 잊혀진다는 건 아픈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 콩트 하나를 썼다. 갸루가 접은 종이학. 미처 보지 못한 커다란 밤나무. 먹지 못한 타코야키. 그녀의 웃음소리. 그녀의 웃음소리. 나리타에는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녀는 공항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리타든 하네다든 인천이든 부산이든 전주든 무슨 상관이었을까. 그녀의 눈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 어디든 좋으니 행복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결국 하지 못했다. 인연이라는 건 왜, 어째서 그런 순진한 것이 지 못하는 일까.

  피천득이 아사코와 세 번을 만나고는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거였다고 했던가. 그녀와의 첫 만남은 설렜고 두 번째 만남은 즐거웠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남은 조금 서글펐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애당초 아니 만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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