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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May 14. 2023

2023/05/14

짧은 글 연습

  믿거나 말거나 나는 말하는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었다. 작고 아주 귀여운 놈이었는데 그 몸이 어찌나 작은지 작은 내 손위에 올라앉아 있어도 공간이 넉넉했고 셔츠 주머니에 넣고 걸어 다녀도 부담이 적었던, 그런 녀석이었다.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그 아이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해미는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작은 몸짓에 달린 더 작은 머리 탓인지 그게 아니라면 태어난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았던 탓인지 내가 설명해 주는 것들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문답이었다.

  - 형아 글 안 써요?

  - 오늘은 쉬고 싶어.

  - 매일 쓴다고 했잖아요.

  - 그냥 쉴래 오늘은.

  해미는 나의 왼쪽 셔츠 주머니 속에 위를 보고 누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엽고 기특해 해바라기 씨 몇 알을 건네주었다. 해미는 그걸 받아다 자신의 배 위 올려놓고는 한 번에 한 알씩 주워 먹었다.

  말하는 햄스터를 숨기고 다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에 찍소리와 함께 작은 말소리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주변의 사람들은 귀를 곤두세워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나마 어른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귀가 밝은 아이들은 찍 소리 하나에도 나의 뒤를 쫓으며 셔츠 속을 보여달라며 졸라댔다. 아이들을 무시하고 걷던 중 해미가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아이들은 저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며 더욱 신이 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의 위험을 겪고 해미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해미는 햄스터였다. 햄스터는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동네 초등학생을 피해서 길을 돌아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해미를 풀어두었다. 작은 철창에 가둬두기에는 녀석이 그저 그런 햄스터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구 뒤편으로 숨어버릴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애당초 이불 한 장에 티브이와 냉장고가 전부인 작은 옥탑방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웹진 몇 군데에 여행 칼럼 따위를 쓰며 습작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웹진이라고 해봤 동아리 수준의 작은 회사들이었고 여행 칼럼이라고 해봤자 구글링 몇 번으로 나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쓰인 뇌피셜에 가까운 글이었다. 적당히 먹고 살만은 했다. 옥탑방 월세 정도는 나왔고 해미 사료와 내가 먹을 것들 살 정도는 나왔으니깐 문제없었다. 적당히. 적당히. 이 적당히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적당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나에게는 상관없었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안도감을 느끼고.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참 물렁한 단어였다.

  소설은 잘 쓰이지 않았다. 인생 경험이 부족하고 철학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부족하고. 그딴 이유는 아니었다. 애당초 내가 왜 소설을 쓰고 싶은 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쓰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도 모를 이유에 나는 소설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저 문장 몇 줄 만들어 낼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하기에 소설이라는 녀석은. 뭐랄까. 그러니깐. 그냥 쉽지 않았다. 나는 그저 글이 좋았을 뿐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이었다. 존재감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나의 의견은 말보다 글로 더 전달이 잘 되었고 휘리릭 날아가버릴 생각은 어딘가에 기록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곤 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결국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 개 똥 같은 글들을 여기저기 싸지른다 한들 결국 남는 건 이야기뿐이니깐.

  해미는 몸이 따뜻했다. 크림색의 털이 보드랍게 스쳐 지나면 그 온기가 고스란히 손바닥 위로 전해졌다. 몸이 작은 짐승은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손가락 끝에 닿은 해미의 몸통에서는 작지만 강한 박동이 끊임없이 울려댔다. 햄스터는 수명이 짧다는데. 해미와의 여행을 결심한 건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해미를 만나고 두 번의 신춘문예를 보내고 32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여행칼럼을 여기저기에 싸질렀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껴졌다.  

  - 우리 내일 여행 가자 해미야.

  - 여행? 여행이 뭐예요?

  - 다른 곳에 놀러 가는 거야.

  - 놀러 가요? 왜 놀러 가요?

  - 좋은 기억 만들고 싶어서. 아무것도 아닌 기억은 그냥 잊히거든.

  - 잊혀? 그건 무슨 뜻이에요?

  - 지난 일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 거야.

  해미가 찍소리를 내며 검은 눈동자로 나를 올렸다고 있었다. 나는 가지런히 모아진 해미의 두 손에 해바라기 씨 하나를 건네주고는 검지손가락 끝으로 해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에 다이소에 가서 2000원짜리 빨간색 손잡이 뚜껑이 달린 투명 플라스틱 통 하나를 구입했다. 바닥에는 톱밥을 깔고는 뚜껑 부분에 구멍을 뚫었다. 해미가 마실 물은 담기 위해 작은 아기 젖병도 하나 구입했다. 그날밤은 소설이 잘 쓰였다. 깊은 고민 없이도 쓰이는 글들을 보며 나는 조금 즐거웠다. 밤은 깊어갔고 글을 쓰는 내내 해미는 내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었다.

  우리는 도립국악원 앞에서 271번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는 일은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버스는 정거장마다 멈추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타고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해미를 기웃거렸지만 크게 신경 쓰 눈치는 아니었다. 해미는 통 속에서도 여전히 찍소리를 내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지만 사람들 귀에는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해미가 창 밖을 잘 볼 수 있도록 버스 가장 뒷자리에 앉아 통을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평일 낮의 모악산은 한적했다. 넓은 주차장에는 고작 몇 개의 승용차들만이 있었다. 나는 해미를 통에서 꺼내 어깨 위로 올려주었다. 해미는 기쁜 듯이 찍소리를 내었다.

  - 같이 밖으로 나온 건 처음이네.

  내가 해미에게 말했다. 해미는 다시 찍소리로 답했다.

  정류장에서 산 초입까지는 길이 완만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던 탓인지 길을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산 입구 쪽에는 앰뷸런스가 한 대 서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주변을 감싸고 서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내 대원들이 차에 올라탔고 앰뷸런스의 사이렌을 켰다. 상황이 급한 건지 속도를 높인 차량이 요란하게 우리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 형아 저 차는 왜 시끄럽나요?

  - 시끄럽게 해야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지

  - 왜 비켜주나요?

  - 빨리 병원에 가야 하니깐

  - 병원에 가요?

  - 다친 사람이 있어서 그래

  - 다친 사람이 있으면 빨리 가야 해요?  

  - 응 빨리 가지 않으면 계속 아프잖아.

  - 아프잖아? 아프잖아는 뭐예요?

  녀석은 나의 목덜미에 크림색 털을 비벼대며 물었다. 나는 아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녀석을 아프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 아프다는 건 싫은 거야.

  - 그게 무슨 뜻이에요?

  - 아프다는 건 괴롭다는 거고 편하지 않다는 거야. 나는 아픈 게 싫어.

  - 형아도 아픈 적이 있어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해미는 산을 오르는 내내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댔다. 물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바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해미가 떨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발걸음 조심스래 걸어야만 했다. 우리는 대원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해미는 씨앗을 받아먹으면서 구멍을 넓힌 아기 젖병으로 물을 마셨다. 나는 가방에서 김밥을 한 줄 꺼내 먹었다. 초여름의 날씨에도 땀은 끊임없이 흘렀다. 헐떡이는 나를 보고 해미가 힘드냐고 묻기도 하였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답하였다. 정상까지 두 시간을 더 올랐다. 조금 늦은 탓인지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해미는 연이어 찍찍 소리를 내며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은 해미를 보며 나는 보람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해미는 톱밥 속에 몸을 묻어 잠을 잤다. 몸을 옹송그리고 작은 숨을 내쉴 때마다 해미를 덮은 톱밥들이 살며시 부풀어 올랐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타고 내렸다. 사람들은 해미를 훔쳐보았지만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가로등 불빛이 버스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의식하며 해미가 잠든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후로 쓰레기 수준의 칼럼을 열 편 정도 쏟아내며 여름을 보냈다. 소설을 한 편 완성했다. 여전히 그럭저럭 굶어 죽지는 않을 수 있었다. 해미의 몸이 약해진 건 그즈음이었다. 햄스터의 수명은 짧다던데. 2년이라는 시간은 고작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되지 않을 만큼 짧았다. 해미의 활동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숨은 느려졌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심박은 이전만큼 힘차지 않았다. 해미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무릎이나 배 위에 누워 보냈다.

  그날도 나는 여행칼럼을 쓰기 위해 구글을 열심히 뒤져보는 중이었다. 무릎 위에서 조용히 잠을 자던 해미는 갑자기 내 몸을 기어올라 어깨 위로 올라왔다.

  - 형아 왜 소설 안 써요?

  - 네가 이게 소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 소설 아니잖아요.

  - 아니야. 이거 소설이야.

  해미는 나의 거짓말에 찍소리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해미를 어깨에 올려둔 채로 계속 검색을 하며 글을 써나갔다. 왼쪽 귀 아래에서는 해미의 낮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 형아.

  - 응?

  - 나 내려줘요. 집에 가고 싶어요. 힘이 없어서 못 내려가겠어요.

  나는 해미를 손에 올려 플라스틱 통의 톱밥 위에 올려주었다. 해미는 천천히 톱밥을 몇 번 파해치더니 힘이 든 건지 이내 포기하고는 그대로 몸을 낮게 엎드렸다. 해미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고 톱밥을 파내 고개를 파묻으려고 애썼다.

  - 형이 도와줄까?

  - 아니에요. 형아는 저기 가요.

  - 왜 그래? 해미야.

  - 형아 저기로 가요. 여기 안 돼요.

  해미가 가쁜 숨을 내쉬면서 힘겹게 말했다. 나는 해미가 뭘 준비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 해미야. 너 설마.

  - 빨리 저기로 가요.

  - 너 죽으려고 하는 거야?

  - 죽는 게 뭐예요? 그게 뭔지 몰라요.

  톱밥을 파내던 해미가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기대 누웠다.

  - 형아 이거 보면 안 돼요.

  - 싫어. 해미야. 안돼 죽지 마.

  나는 해미를 톱밥에서 건져 올려 내 손위에 올려두었다. 계속 안 된다고 말하던 해미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작은 몸을 나의 손바닥에 기대었다. 해미가 끊임없이 작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해미의 몸을 두 손으로 바쳐주었다. 해미의 숨이 점점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 형아 나 이제.

  해미가 마지막 말이 힘겹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 나 이제 지나가는 거예요?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옹송그리던 해미의 발과 몸통에서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 해미야.

  - 잊혀진다는 건 아픈 건가요?

  마지막 숨으로 부풀어진 해미의 몸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게 이었다.

  나는 해미를 뒷산에 묻었다. 그곳이라면 모악산이 잘 보일터였다. 가을이 오려하는 건지 나뭇잎 몇 개가 떨어져 해미의 무덤을 덮었다. 시간이 지난다면 낙엽들이 겹겹이 쌓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올해 쌓인 낙엽이 썩어 내년에 다시 낙엽이 쌓이게 되면 나조차도 그 자리를 다시 찾기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시간이라는 것이 삶과는 별개의 문제 같아 보였다. 시간은 예측이 가능하지만 삶은 그러한 것이 아니니깐. 낙엽과 함께 흙으로 돌아갈 것들과는 다르게 기억은 그런 것이 아니니깐.

  산에서 내려와 돌아본 나의 집은 그럭저럭, 적당히라는 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이었다. 말하는 햄스터 한 마리에 감정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의 현실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은행 잔고를 확인하고는 침대를 하나 주문했다. 그리고 밤에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새벽에는 새로운 소설을 한 편 쓰기 시작했다. 그날밤도 소설 쓰는 게 조금 쉽게 느껴졌다. 소설이라는 건 결국 개인의 삶과 철학 위에 세워진 세계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소설을 모르는 이유라는 것도 결국은 나의 부족한 삶의 경험과 빈약한 철학이었다. 시간은 땅에 묻힌 해미를 꼭꼭 숨겨버리겠지만 삶은 결국 시간과는 다른 어떠한 것이라는 걸. 결국 다 그런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오늘 버스를 타고 도심 밖으로 나갔다. 271번을 타는 건 3년 만이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버스에 오르내렸다. 해미가 없이 홀로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풍경들은 무심히 나를 지나쳐갔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나는 그때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글쓰기라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졌고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밤이 되고 가로등 불빛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의 손 안에서 따스한 온기가 스쳐 지나갔다. 크림색의 부드러운 털이 어딘가에서 날렸다. 해미는 몸이 작았다. 형아. 잠시 눈을 감았을 때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려왔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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