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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Jun 02. 2023

2023/06/02

짧은 글 연습

  어두운 병실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몸은 이제 노쇠했다. 언젠가부터 한 번 감은 눈은 쉽사리 떠지지 않았고 먹을 것을 구멍으로 제대로 넘기기가 어려웠다. 특히 한 번 들이쉰 숨을 다시 내쉬는 게 점점 힘겨워지고 있었다. 삐이. 심박정기가 일정 간격으로 짧고 날카로운 신호음을 울려댔다. 잠이 오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달빛을 바라보았다. 밝은 달이었다. 달은 시간에 따라 그 빛을 길게 늘어뜨리며 병실을 비추었다. 창백하기에 더욱 선명했다. 낮이 되면 달빛은 저무는 게 아니라고 햇빛에 제 모습을 숨기는 거라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낮마실을 나갈 때마다 낮에 뜬 달을 찾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무슨 의미를 찾아 지금까지 살았는가.

  달빛은 어느새 나의 병상에 맞닿았다. 그리고 그 빛은 누군가의 윤곽을 비추었다. 검은 옷, 검은 갓, 검은 입술 그리고 창백한 눈빛을 가진 이가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환각일까. 삐이. 나는 숨을 내뱉었다. 가느다란 숨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회 없이 일생을 보내셨는가."

  그 존재가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준비하시게."

  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여기까지인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삶은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 끝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난한 삶이었고 끈질긴 목숨이었다. 열여덞 살 때는 전쟁에 징집이 됐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천에서도 살아남았고 용문산에서도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가. 나이 쉰에 얻었던 첫 손주는 볼이 보드랍고 배냇머리가 가느랐다. 나는 그 부드러움이 좋아 몇 번이고 아이를 쓰다듬었었다.

  "잠시만.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가 힘겹게 말했다.

  "마지막 말이니 편하게 하시게나."

  그가 답했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요."

  "죽기 전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네. 받아들이는 게 편할 걸세."

  "내 말은 그게 아니오. 가 피할 수 없는 건 죽음이지. 당신이 아니란 말이오."

  목청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이 짧은 몇 마디를 꺼내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나의 말에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곧 죽음이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내 생명은 당신이 가져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끝을 마주하기에 죽는 것 아니겠소?"

  삐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삶은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

  "즐거웠던 일들. 서글펐던 일들. 내가 살아온 희망과 절망, 죽음을 비롯한 내 삶의 모든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오. 당신이 나의 마지막일 수는 없소. 그러니..."

  목에서 쇳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숨을 내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자리를 비워주시오. 내 죽음을 마주할 수 있게."

  삐이. 나의 부탁에도 그는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눈을 마주하고 서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어설피 윤곽만 보이던 그의 모습은 이내 완전히 어둠 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던 날. 홀로 앞마당의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었다. 그녀와 내가 아직 젊을 적 심었던 나무는 그새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같이 묻었을 때는 나뭇가지나 다름없는 작은 나무였는데. 삐이. 병실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마침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눈을 감았다. 언젠가부터 한 번 감은 눈은 쉽사리 떠지지 않았고 한 번 들이쉰 숨은 다시 내쉬기가 쉽지 않았다. 삐이. 조용한 병실이었다. 마지막 내뱉는 숨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아 짧은 생이었다. 삐이이이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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