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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Aug 17. 2023

2023/08/17

짧은 글 연습

  네가 나에게 작은 가방건넸다. 그 안을 살피니 챙모자 하나와 몇 권의 책, 필름 몇 통과 스킨로션 따위가 들어 있었다. 모두 내가 쓰던 것들이었다. 고작 이런 것들 때문에 수개월만에 연락을 준 것이었을까. 내가 너를 바라보았지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가는 거야? 내가 물었다.

  응. 네가 답했다.

  완전히?

  그렇지.

  그럼 다시는 돌아올 일 없는 거야?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모두들 거기 있으니깐. 짙은 남색 셔츠의 소매 부분에 낯익은 하얀 물감 자국이 보였다. 모두 그대로구나. 너는 한여름에도 가끔씩 팔이 긴 셔츠를 입곤 했지. 그게 너랑 너무 잘 어울렸었어. 너는 여전히 너구나.

  머리는 언제부터 기른 거야? 내가 물었다.

  너랑 헤어지고. 네가 답했다.

  항상 짧은 머리만 하더니.

  그야 네가 짧은 머리를 좋아했으니깐. 네가 손으로 머리끝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넌 참 어리석어. 네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은 있어? 네가 물었다.

  만날 뻔한 사람은 있었지. 내가 답했다.

  리고 정해. 여전히. 네가 말했다

  우리는 전과 같이 나란히 걸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는 적당히 떨어져 걸었다는 점이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옆을 지나쳐갔다. 친구와 함께 술에 취해 걷는 사람도 있었고 홀로 고개를 숙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걸음걸이와 행색은 모두가 제 각각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본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고 말했다. 너는 바밤바를 골랐고 나는 팥빙수를 골랐다. 저녁이 되었지만 여름의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너의 목을 따라 땀 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우리는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았다.

  네가 했던 말 기억나? 시간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말.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운하게 들렸는데 이제는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네가 말했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빙수 아이스크림이 너무 꽁꽁 얼어버린 탓에 플라스틱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빙수를 몇 차례 찍어 눌렀다. 너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먹고는 그런 나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째서 우리는 서로 변화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 주지 못했을까. 너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볼게. 잘 지내. 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너의 손에는 미처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이 아직 손에 들려 있었다. 

  미국에 가면 잘 도착했다고 마지막으로 연락 한 번만 줘. 내가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싫어. 너의 짙은 남색 셔츠와 낯익은 하얀 물감 자국.  너는 여전히 너구나.

  왜? 조금 길어진 너의 머리카락. 하지만 조금은 달라졌어.

  우리 그 동안 너무 구질구질했잖아. 여기서 이렇게 끝내는 게 맞아. 너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서 홀로 걷기 시작했다. 너는 방향을 꺽지 않고 오래도록 한 곳만을 향해 걸었다. 너는 끝까지 뒤돌아 보지 않았다. 너는 어디까지 걸을 생각이었을까. 너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어디까지 긍정할 수 있는 사이였을까.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영영 알 수 없겠지. 너의 뒷모습은 오래도록 보였다. 나는 너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너와 나는 그렇게 마지막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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