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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걸 Feb 11. 2024

설거지로 마음을 달래기

몸으로 하는 노동의 소중함

일본의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는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에서 가만히 일에 집중하기를 추천한다. 귀찮고 번거로운 '잡일'이라도 그 일을 하는 동작 자체에 집중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문득 그런 메시지를 떠올리게 된 것은 설거지를 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아! 귀찮아. 이 설거지를 언제 다 끝내지?'


라는 싫은 마음이 떠오르고 있었다. 설거지에 집중해 마음 챙김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저분한 접시가 거품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지켜본다. 물로 닦아낼 때 반짝반짝 깨끗한 그릇이 되어 나타나는 그 모습이 좋다. 닦아낸 후에 뽀득거리는 접시의 촉감이 기분 좋다. 보기 싫었던 설거지 더미가 꽤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상쾌함도 느껴진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행위는 분명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식근로자의 일 대부분은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일이 분명한 끝이 없이 어정쩡하게 마무리된다. 제대로 끝내지 못했어도 끝이 있으면 차라리 낫다. 했던 일을 몇 번이고 다시 번복하거나, 의미 없는 보고서를 끝도 없이 수정하게 된다. 사무직이라는 일은 비록 몸은 편하지만, 내 일의 재미와 보람을 눈으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때로는 설거지 같은 몸으로 하는 일이 깔끔하게 느껴진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정해진 분량이 있다. 끝이 나면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다. 동작 자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손을 움직이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집안일의 무게감이 가벼운지도 모른다. 아마 주부들은 몇 배 더 지긋지긋하게 느낄 것이다.)


육체노동이 마음 챙김이 되기 위해서는 오로지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내는 요리나 설거지를 할 때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없고 목뼈 자세에도 좋지 않다고 해도 들으려 하질 않는다. 자기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집안일을 할 엄두가 나질 않는단다.


마음을 컨트롤하는 법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반드시 '명상'을 추천한다. 육체를 단련하듯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에는 명상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워낙 많은 전문가의 추천이라 틀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명상을 실천하기가 꽤 어렵다는 점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포즈를 잡고 명상을 시도해 보았지만 꾸준히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일상의 행동 자체가 생각을 바꾸면 명상이 된다. 음식을 먹을 때, 그 맛과 씹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려 노력하면 명상이 된다. 조깅하면서도 내 몸의 감각과 호흡, 기분을 가만히 관찰한다면 명상이 된다. 설거지와 같은 집안일도 그 일에 집중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명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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