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은 못 해 주겠다
"팀장님, 저는 OO전략팀에 가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팀을 떠나고 싶다는 말도 꽤나 섭섭한데,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인사팀에서 OO전략팀 충원을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팀장님께서 저를 적극 추천해 주시면 좋겠어요. 인사팀장님과 말씀 나눌 기회가 있으면 저에 대해 좋은 말을 좀 해주세요."
간혹 이런 팀원을 마주칠 때가 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면담을 계속하려고 노력하지만... 좀 황당하다. 영업지원팀장을 앞에 두고 소속 팀원이 저는 영업지원이 맞지 않아요 라는 말을 대놓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친구들이 꽤 있다.
나는 팀원의 커리어 면담에 적극적이다. 오래 같은 일을 한 팀원이 있으면 먼저 새로운 직무를 체험해 보도록 권하기도 한다. 자기 일에서 성과를 내고 있고, 거기에 만족하고 있던 친구라면 적잖이 놀라기도 한다.
"정 책임은 팀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같은 일을 너무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1년 뒤에는 다른 팀에서 새로운 직무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지금 팀이나 직무에 큰 불만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일에 익숙한 팀원이 다른 부서에 가면 팀장님도 힘드실 텐데 먼저 커리어 확장을 생각해 주실 줄 몰랐네요. 조금 놀랐지만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커리어 면담을 하다 보면, 먼저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주장하는 팀원을 만난다. 오랫동안 우리 팀에 기여했고, 성과를 많이 쌓았다면 그의 성장을 위해 보내주는 게 맞다고 느낀다. 당장 그가 없으면 우리 팀도 나도 성과 창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래도 그 팀원이 더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보내주여야 한다. 이렇게 커리어 성장을 챙겨주면 남은 팀원들이 더 몰입하고, 더욱 열심히 일하려 애쓴다. 큰 방향에서는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그런데 먼저 발령을 요청하는 사람은 대부분 얼마 일하지 않은 신입사원이나, 최근에 배치된 팀원이다. 아직 제 몫도 해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동을 이야기한다. 이럴 때가 가장 당혹스럽니다.
"최 책임은 아직 우리 팀에 발령받은 지 2달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전임자만큼 업무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아직 직무 이동은 좀 성급한 생각인 것 같은데?"
"2달 정도면 충분히 직무를 경험하고 여러 가지로 고민할 시간을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해 보니 이 직무는 제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 직무나 팀이 맞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동 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이런 이슈는 인사팀에 이동 신청을 하거나 고충 상담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우리 팀에 가장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나 먼저 우리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해야만 팀원들은 설득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 우리 팀이 얼마나 좋은 부서인지 인터널 마케팅을 하고, 계속 우수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 팀장에게 대놓고 여긴 맘에 안 든다고 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당시 내 마음은 연애 상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난 너와 맞지 않아. 그러니 우리 헤어져. 헤어져도 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멋진 연애를 하고 싶어. 그러니 주변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좋은 면만 이야기해 줘."
헤어지는 마당에, 이젠 완전한 남남이 되는 상황에, 너의 미래 만남을 도와주기까지 해야 하다니...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렇게는 못 한다.
팀장과 팀원 사이는 기본적으로 상호 트레이드 관계이다. 팀원은 팀 성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팀장은 팀원이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 업무 환경을 지원한다. 전형적인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누군가 한쪽이 쌍방 거래 관계를 파기하고자 하면 그걸로 끝이다.
많은 팀장들이 리더는 어디까지 헌신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로 고민한다. 조직 내에서의 팀장과 팀원이 공평한 기브-앤-테이크의 관계라 하더라도, 리더십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리더가 정해진 것 이상의 차별화된 성과를 올리고 싶다면, 팀원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리더가 먼저 기브-앤-테이크 이상의 무엇을 주려고 할 때에만 신뢰가 싹튼다. 팀원 네가 탁 이만큼 하면 나도 이만큼 너를 지지해 줄 거야... 이런 마인드의 팀장에게 마음을 줄 팀원은 없다. 리더십을 논할 때는 리더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팀장은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어떤 팀원에게 헌신할지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이 가지 않는 팀원, 선을 넘는 팀원에게까지 헌신하고 배려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면 팀장인 내가 너무 불쌍하고, 리더 노릇이 비참해진다. 적어도 내가 먼저 마음을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자기 마음도 열려고 노력하는 팀원만 존중하고 배려할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팀을 떠나겠다는 팀원을 험담하고, 훼방을 놓지는 않는다. 리더로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치졸한 사람이 된다. 그럴 시간과 기력이 있다면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팀원들을 위해 쓰는 편이 좋다. 그렇다고 제 갈 길 가겠다는 사람을 적극 도와줄 생각도 없다.
새로운 연인을 찾던, 독신을 고집하던...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