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초집중을 위한 스프린트

실무형 팀장의 시간관리

by 임희걸

1. 자꾸 흐름이 끊겨서 진도가 안 나가는 일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일은 전혀 진척이 없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하는 생각에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초조해집니다. 초조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일은 제대로 되질 않습니다. 결국은 마감 기한 내에 업무를 끝마치지 못합니다. 뒤돌아보니 조바심을 내느라 낭비한 시간이 일을 한 시간보다 더 많습니다. 많은 팀장님들이 이런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반기마다 3주에 걸쳐 진행되는 반기 사업계획 수립이 이런 일에 해당합니다. 다음 반기 본부와 팀의 사업계획을 CEO께 보고하는 일정은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 내에 지난 반기에 대한 성과와 반성, 경쟁사의 동향, 현재 우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정리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적합한 전략 방향을 세우는 것도 3주 안에 끝내야 하죠. 실무형 팀장으로서 팀의 전략 방향과 같은 핵심 업무는 직접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핵심 업무가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이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은 각종 회의, 보고 및 행정 절차로 핵심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언젠가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 큰 만족감을 얻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와 같은 상황을 재연해 보려고 해도 잘 되질 않습니다. 6개월마다 사업계획을 세워야 할 때가 돌아오면 1~2개월 전부터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메이크 타임>의 저자 제이크 냅과 존 제라츠키는 이런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스프린트 방식>을 추천합니다. 이 두 사람은 구글 소속으로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구글 벤처스'에서 일했습니다. 제이크 냅은 구글에서 프로젝트 수행법 <스프린트>를 개발해서 널리 알렸고 이에 대한 책도 썼습니다. 스프린트는 이미 스타트업과 같은 프로젝트 팀에서 일하는 방법으로 유명합니다. 저자들은 스프린트를 개인의 일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2. 스프린트 기법이란 무엇인가?


스프린트는 긴 기간 계획보다는 짧은 주기로 시간을 나누어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보통 5일 안에 단위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검증합니다. 제이크 냅은 몇 달이 걸렸던 제품 개발 과정을 일주일에 압축해서 추진하였습니다.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에 프로토타임을 만들고 테스트를 해서 빠르게 결론을 얻었습니다.


팀 스프린트는 보통 이렇게 돌아갑니다.

- 월 : [문제 정의] 팀이 함께 목표를 수립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의합니다.
- 화 : [아이디어 도출] 팀 구성원이 각자 해결책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 수 : [의사 결정]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투표와 결정권자의 판단으로 아이디어를 선택합니다.
- 목 : [프로토타입 제작] 실제 제품을 만들지 않고 그럴듯해 보이는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듭니다.
- 금 : [사용자 테스트] 사용자에게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합니다. 팀은 관찰하며 인사이트를 모읍니다.


스프린트를 목적은 마감 / 우선순위 세팅 / 실행력 강화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5일이라는 강한 마감 일정이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은 우선순위를 강제로 정리하게 됩니다. 또한 회의나 보고 같은 부수 업무보다 실행에 에너지를 집중하게 합니다.



3. 개인의 일에 스프린트 적용하기


<메이크 타임>의 저자들은 팀의 스프린트 방식을 개인의 일에도 적용해 보길 권합니다. 이 방식을 참고하여 저는 주 5일 중에서 3일에 집중하는 스프린트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저희는 스타트업처럼 한 가지 프로젝트에만 몰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상 업무를 수행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3일 정도(월~수) 핵심 업무에 집중하고, 나머지 2일 정도(목~금)는 일상적 업무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3주 동안 사업계획을 작성할 때 주로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3주 내내 사업계획에 집중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회의, 팀원 면담, 각종 문제 해결에 뛰어다니다 보면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회사에서 내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닙니다. 직장인은 자기의 시간을 저당 잡히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내 시간을 오롯이 집중한다는 것 자체가 오산입니다.


그래서 3주의 업무 기간 중 월~수요일 3일만 사업계획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월화수는 모든 회의, 면담을 목/금요일로 미룹니다. 상사가 급한 일을 지시하면 차상위 팀원에게 부탁을 하거나, 목요일에 처리해도 되는지 묻고 며칠만 일을 미뤄둡니다. 다른 부서에서 아무리 급한 회의라고 윽박을 질러도 목/금요일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물론 월~수를 완벽하게 비워놓는 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그래도 상당한 정도의 업무는 뒤로 미룰 수 있었습니다. 이해관계자들도 처음에는 급하다고 법석을 떨지만, 완강하게 이야기하면 결국 며칠 정도는 시간을 주는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3일 X 3회의 시간 동안 혼자 스프린트를 합니다. 팀의 스프린트와 마찬가지로 한 주 동안 해야 하는 업무량 목표를 세웁니다. 월요일에는 목표설정 / 가설 수립 / 문제점 정의 / 아이디어 도출을 합니다. 화요일에는 아이디어 중 일부를 솎아내고,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해결방안을 도출합니다. 필요하면 상사나 유관 부서의 의견을 구합니다. 수요일에는 그동안 진행된 분량을 가지고 셀프 피드백을 합니다. 문제가 잘못 정의됐거나 가설 검증이 잘못된 점이 있는지도 살펴봅니다.


보통 첫 주에는 지난 반기 분석, 경쟁사 자료 조사에 집중합니다. 데이터를 산출하고 분석하려면 무턱대고 숫자를 뽑아서는 안 됩니다. 충분한 가설을 가지고 그 가설을 입증할 데이터를 뽑도록 해야 합니다. 데이터 산출에는 꽤 많은 시간과 막일(?)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보통 꼭 필요치 않아도 일단 한 번 보자는 시간에 과도한 데이터를 뽑으면 이걸 살펴보고, 시사점을 찾는 데 굉장한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죠.


매일 퇴근 전에 10~20분 정도는 자체적으로 <일일 확인>을 합니다. 매일 계획했던 진도를 나갔는지 확인합니다. 중간에 끼어든 일이나 회의 때문에 진도가 늦지 않았는지 점검합니다. 혹시 일일 진도가 늦어졌다면 다음날 어떻게 추가적인 업무량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10분 정도 떠올려 봅니다. 이 과정을 한 주가 끝날 때에 다시 반복합니다. 다음 주에 어떤 식으로 스프린트를 진행해야겠다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이전까지는 업무 진도를 확인할 때마다 '늦어져서 어떡하지?', '과연 마감에 맞출 수 있을까?'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하루마다, 주간마다 진도를 확인하고 있으므로 걱정만 하는 시간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간의 계획을 세우는 방식으로 실리적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barni1-sports-659224_1280.jpg



4. 스프린트의 약점


이런 일 하기 방식에 대해 읽는 분들은 다 이런 질문을 떠올릴 겁니다.

'일개 팀원 주제에 3일간 일을 미뤄두는 게 가능할까?', '팀장이라서 며칠이라도 급한 일을 미뤄두는 게 가능한 게 아닐까?', '누군가는 월~수를 스프린트를 위해 비워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처지가 아니야.'


저는 영업팀장으로서 하루에도 3~4개의 회의가 있습니다. 감독기관이나 국세청 등 정부 기관에서 마감을 넘기면 큰 과징금을 매기겠다고 압박을 받는 때도 있습니다. 소송을 당해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그대로 스프린트를 할 때는 어떻게든 3일이라는 시간을 비워 두려고 노력합니다. 이 기간에는 5일 동안에 해야 할 일상 업무를 목요일, 금요일 2일에 해치워야 합니다. 따라서 해당 요일에 업무 부담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어떻게든 스프린트를 하려고 애쓰는 것은 "급한 일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을 미루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모든 팀원이 제게 이건 진짜 급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부서가 자기들이 요청하는 자료는 "진짜 급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회사에는 급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급한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일은 그리 급한 일은 아닙니다.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꾸 뒤로 미루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아마 스프린트를 그냥 적용하기는 어려운 분이 많을 겁니다. 스프린트 방식은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 회사, 우리 팀의 업무 환경용으로 튜닝"해야 성공 확률이 올라갑니다. 특히 큰 조직일수록 가해지는 제약이 큽니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일이 진행되려면 승인하고 검토할 라인이 많습니다. 내가 빨리 진행하고 싶어도 검토를 받으려고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부서 간 의존성이 크므로 다른 부서의 사람들을 설득하다 보면 스프린트 기간 내 완료가 어렵습니다. 윗사람이 일의 우선순위를 자꾸 바꾸면서 업무 계획이 계속 변경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스프린트 방식은 구글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스타트업과 혁신 기업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한국 기업에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업 환경과 문화에 따라 적용이 어려울 수 있는 방법이란 겁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일하는 여건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스프린트를 적용해 볼 여지가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어차피 성과란 자질구레한 급한 일에서 높은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핵심 업무 1~2건에서 전체 업무 성과의 80%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남들이 급하다고 말하는 사소한 일보다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일 한 가지를 제대로 해 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간이 흘렀을 때, 나의 성과 포트폴리오가 풍족해집니다.


저는 매주 스프린트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반기에 사업계획을 세울 때, 신규 비즈니스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와 같이 중요한 순간에만 스프린트를 합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그 중요한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때가 있었나요? 빨리 저 일을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하면서도 손을 댈 시간이 없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러면 스프린트 적용을 고민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Eat That Frog 시간관리 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