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는 왜 90년생에게 그토록 관심이 많은가?
오랜만에 나보다 먼저 팀장이 된 친구를 만났다. 맥주를 한두 잔 기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회사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친구에게 코칭과 피드백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다.
“요즘 우리 팀 신입사원을 가르치기 위해 종종 코칭 면담을 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너는 팀원들을 어떻게 코칭하고 있어?”
“코칭? 면담? 도대체 그런 걸 왜 하는데?”
팀장인데 예하 직원들과 소통할 시간을 갖지 않는다니 과연 친구는 어떻게 팀 운영을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책을 보든 강연을 듣든, 직원 육성을 위해서는 코칭과 피드백을 하라고 하던데….”
팀장 친구는 손사래를 쳤다.
“괜히 그런 짓 하지 마라. 그러다 잔소리하는 꼰대 취급이나 받을 뿐이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일걸. 그냥 일 시킬 때나 몇 마디 하지, 괜히 90년생들과 말 섞어서 좋은 것 없어.”
기존 세대는 90년대생을 당혹스러운 존재로만 여긴다. 이해할 수도 없고 어울리기도 힘든 존재, 90년생.
영화 <주토피아>는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사는 도시가 배경이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부 육식 동물이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벌어지는 상황이 오묘하다. 초식 동물들은 대놓고 육식 동물을 차별하지 않지만, 그들을 무서워하며 눈치를 살핀다. 이전까지 친구였던 육식 동물이 언제 잠재적인 가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90년생은 조직에서 육식 동물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겉으로는 조직의 구성원이고 팀의 일원일 뿐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선을 긋는다. 팀 전체가 바쁜 시기라 하더라도 “미안하지만, 과장 이상은 야근 좀 해야겠다. 젊은 친구들은 먼저 가.” 배려인지 차별인지 알 수 없는 선이 생긴다.
팀장급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교육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90년생과 함께 일하는 법’이다. 강사의 스토리는 대부분 엇비슷하다. ‘90년생은 기존 세대와 매우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모바일 네트워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각의 틀이 차이가 난다. 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180도 바뀌어야 한다. 바뀌지 않는 리더는 큰 곤경에 빠질 것이다.’
임홍택 작가의 책 <90년생이 온다>의 히트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각인하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당연히 90년생이 아니다. 임원, 팀장 등 리더들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90년생의 등장에 따른 사회 트렌드와 조직 문화의 변화를 읽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90년생이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리가 있겠는가.
‘큰일 났네. 이 친구들 참 별종이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막상 회사에서 나와 함께 일한 90년생들은 색다른 존재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도 여느 세대의 사원과 마찬가지로 성장에 대한 열망이 컸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개인 생활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윗사람보다 먼저 퇴근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나쁜 관행에 수긍하지 못할 뿐이다.
책 <90년생이 온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공평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은 90년생은 공평이라는 키워드에 유독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이 현상을 보며 기존 세대는 또 한 번 ‘90년생은 다르다.’라는 말을 꺼냈다.
공평은 90년대생의 키워드가 아닌 대한민국 중산층 모두의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빠른 속도로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 ‘공평’이라는 말은 은근슬쩍 감춰두기에 바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경제 구성원 전체에게 자연스럽게 이득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수효과’ 같은 개념이 분배와 평등보다 더 중요시되었다. 그렇게 몇십 년을 달려왔으면 이제 공평, 분배, 투명성이라는 화두를 꺼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에 굳이 90년생을 갖다 붙이는 프레임이 이상할 뿐이다.
전에는 공정한 보상 논의가 이루어질 소통 창구가 부족했다. 반면 지금은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 직장인이 자기 회사에 관해 이야기할 창구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과거 술자리 뒷담화에 불과하던 성과급 산정 기준이 공론화될 수 있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루디외는 특정 계층은 그 계층을 구별 짓는 취향이나 관습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취향이나 관습을 ‘아비투스’라고 부른다. 구별짓기는 동일 계층 간에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계층 내의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해당 계층에 들어오지 못하는 집단을 배제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아비투스는 새로운 멤버가 기존 집단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드는 진입 장벽이 된다. 뉴 멤버는 그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습득해야만 진정한 계층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성세대는 구별짓기를 하고, 어떻게든 여기에 끼려고 안간힘을 쓰는 쪽이 90년대생이다. 기존 계층의 진입 장벽이라는 면에서 90년생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조직에 적응하기 힘들지 짐작이 된다.
‘밥도 술도 혼자 먹는 게 편한가 보네. 회식에 의무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니 좋겠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생각해 버리곤 한다. 하지만 90년생이라고 혼자서 밥 먹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개중에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기를 바라는 이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기성세대에 의해 혼자 밥 먹는 사람으로 정의되고 말았다.
90년생을 대하는 기존 세대를 보면 마치 자신들의 두려움을 이들에게 투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화와 언택트 트렌드를 미래의 것이 아닌, 현재의 것으로 만들었다. 기성세대에게는 이런 트렌드가 큰 직장생활의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차장이 무슨 인스타 마케팅을 담당하겠다는 거야! 자네가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알기는 해? 이번 마케팅은 김 주임이 맡아서 해. 모바일 관련 프로젝트는 신세대가 해야지. 구세대가 신세대 고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최근 인스타 마케팅 관련 회의에서 들은 말이다. 박 차장은 모바일이라고 무조건 신세대가 더 잘 알 것이라는 편견이 갑갑하다. 큰 책임을 떠맡게 된 김 주임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마케팅과 관련해 업무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데 인스타그램이라는 말이 붙는다는 이유로 일이 오롯이 자신에 넘어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박 차장과 같은 기성세대는 디지털화에 대한 불만을 김 주임에게 투영하게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김 주임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투영된다. 그리고 이렇게 세대 간의 벽이 처지고 구별짓기가 행해진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만의 관례나 문화를 만들어 타인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다.
90년생은 우리 기업문화에서 별종으로 구분 지어졌다. 기성세대는 자신들만의 골프 모임, 술자리 모임, 흡연 모임을 만들어 벽을 높이 쌓았다. 90년생이 기존 조직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개성을 중요시해서 선배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러기도 전에 이미 어울리기 힘든 사람으로 낙인찍힌 셈이다.
이러한 진입 장벽은 새내기 직장인의 배움과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된다. 회사의 업무처리 방법은 전임자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 현재의 모습이 된다. 개인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적절한 피드백과 코칭이 없다면 업무 능력을 키우는 데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친구들은 달라.’라는 생각으로 선배들이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운다면 후배들의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