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 라는 질문
브런치를 쓰다 보면 정기적으로 현타가 온다. 나에게는 삼 개월마다 이런 슬럼프가 찾아온다. 시작은 주로 이런 생각이다.
‘나는 왜 돈도 안 되는 글쓰기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을까?’
이 생각을 기점으로 ‘왜? 왜? 왜?’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그리고 한동안은 쓰지 못하게 된다. 회사일, 집안일이 많다. 아이들 공부도 봐줘야 하고, 취미도 즐기고 싶다. 그런데 글쓰기에는 시간이 많이 든다. 브런치 글 한 편을 쓰는데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5시간을 쓴다. 적지 않은 수고다.
많은 작가가 글쓰기는 애증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안 쓸 수도 없고, 쓰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김영하 작가는 강연에서, 작가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직업군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거다.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수익이 나오지 않고, 취미라고 하기에는 즐겁지 않다.
글쓰기가 즐겁다고 말하는 작가를 보면 신기하다. 취미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게 아닐까? 난 글을 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 적이 없다. 물론 취미도 때로는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유희를 위한 활동임에는 분명하다. 내 유희를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처음부터 글쓰기에 목적이 있었다. 그냥 즐거워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다 보니 기억의 휘발성이 문제가 되었다. 언젠가 사놓고 읽지 않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참 재밌게 읽다 이전에 내가 그어놓은 밑줄을 발견했다. 이미 한 번 완독을 한 책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같은 책을 또 사기도 했다. 새 책을 책장에 꽂으려다 이미 같은 책이 꽂혀있음을 발견했다.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읽은 후에는 기록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결심했다. 단순히 메모만으로는 지식의 조각일 뿐이다. 따라서 읽은 내용에 내 생각을 얹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면 기록의 효과와 생각을 정리하는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되니 독서의 효과가 배가 될 것이었다. 문제는 쓰기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예상보다 억수로 노력이 투여되었다.
생각의 정리. 그 외의 소득을 바라고 시작한 건 아니다. 그런데 본전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현대인의 모든 활동은 성과 창출과 연관된다. 글쓰기라는 노동을 했으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거나, 책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와야 흡족할 것이다. 딱히 성과를 찾을 수 없으면 투입된 자원을 모두 허비한 셈이 된다. 뼛속까지 현재 자본주의가 스며들어 있나 보다. 도대체 아무 얻는 것 없는데 이 짓을 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솟아오른다. 삼 개월마다 꼬박꼬박.
웹이나 SNS가 없던 시절에는 글쓰기가 온전히 좋아서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 시대에 혼자 글을 쓴다면 아무도 내가 썼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은 오롯이 생각의 깊이를 늘리기 위해 썼을 것이다. 글쓰기 자체로 마음을 정화하려고 글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라는 글이 오픈되는 플랫폼을 사용한다. 이건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브런치 작가들에게 설문이라도 해 보고 싶다.
당신을 왜 글을 씁니까? 글을 쓰는 게 진짜 즐겁나요? (저만 쓰레기인가요?)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언제까지고 쓸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