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닌데 달려야 글이 써진다

글 쓸 때의 루틴에 대하여

by 임희걸

나는 달리기를 해야만 글감이 떠오른다.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조깅화를 신고 달려야 한다.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이다 보니 매일 달리기 부담스럽다. 일단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또, 요즘 같이 추운 날에는 감기가 걸릴까 걱정도 된다. 그래도 글을 쓰려면 뛰는 수밖에 없다.


오래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자신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 또 달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참 열심히 달렸다는 사실만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미국에 교환 교수로 갔을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강변을 달렸다. 하루키는 정기적으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마라톤을 위해 발상지인 그리스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작가 하루키에게 글은 일에 해당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지식근로자에게 일이란 정신의 고통을 수반한다. 어느 정도 몰입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 일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도망치려는 자신을 잡아두는 루틴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루틴을 통해 일을 쉽게 시작하고, 깊은 몰입 상태에 더 빨리 이를 수 있다.


내가 달리기를 통해 글감을 얻는 과정은 이렇다. 한참을 뛰면 몸이 어느 정도 따듯해지면서, 약하게 힘든 상태가 된다. 이 단계는 달릴수록 점점 생각이 옅어지는 단계다. 달리기 전에는 회사 생각, 집안일 생각, 손해를 보고 있는 주식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이번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아이디어는 달리기 전의 잡념과는 다르다. 잡념은 단편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아이디어는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50분 정도를 달리면서 20분 정도는 잡념의 시간, 10분은 머리가 비워지는 시간, 나머지 20분은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시간이다.


달리기는 명상과 비슷하다. 명상 또한 잡념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무념의 상태가 된다. 그대로 무념의 상태를 유지하는 명상법도 있고,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는 명상법도 있다.


안타깝게도 달리기를 하면서 생각난 글감은 약간 위험하다. 달리기는 내 정신 상태를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만든다. 마치 조증 상태에서 쓴 것과 같은 글이 된다. 글에 지나친 자신감과 드센 주장이 담긴다. 달리기하며 떠오른 글은 메모만 해 둔다. 다른 날에 여러 차례 퇴고를 거친 후 브런치에 올린다.


아마 브런치의 작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루틴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나처럼 달리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들이켜야 하는 사람이 있고, 음악을 들어야 글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과정이 없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시간을 쓰면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을, 달리기로 1시간을 소비하니 글을 쓸 시간이 줄어든다.


때로는 루틴이 고맙다. '자, 이제부터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자.'라고 생각하면 조금 괴롭다. 자꾸 물을 찾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일부러 만들며 글쓰기를 회피한다.


'일단 기분 좋게 달려볼까?' 그렇게 달리기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글이 안 써질 때일수록, 루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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