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대가도 시작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참 이상하다. 수년간 글을 썼지만 아무리 써도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쓰기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힘들다.
그런 내게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김민식 작가를 만난 순간이다. 김민식 작가의 원래 직업은 MBC 드라마 PD였다.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글쓰기 고수였다. 나는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김민식 작가를 만났다.
그는 노조 부위원장으로 MBC 파업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지방의 발령지로 좌천당했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사의 압박 속에서도 글쓰기라는 희망을 붙잡은 덕분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글쓰기와 책 집필은 벼랑 끝에 몰린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글이 삶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그 말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약 1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고 평소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냥 솔직한 고민을 질문 속에 털어놓았을 뿐이다.
“좋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써야지 하고 생각하다 보니 도무지 시작하지를 못하겠어요. 써야지, 써야지…. 하고 되뇌다 일주일이 가고 이 주일이 흘러갑니다. 저, 어쩌면 좋을까요?”
우문현답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의 답이 너무나 훌륭했다. 그는 글쓰기의 초보든 고수든 글을 쓰는 모든 이가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했다. 김민식 작가 본인은 물론, 글로 먹고사는 전업 작가들도 쓰기 직전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방법을 씁니다. 쓰기 직전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거죠. ‘오늘도 쓰레기를 한 편 쓰자.’ 이렇게 말이에요.”
그 간단한 한 마디가 얼마나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는지!
이건 김민식 작가가 생각해낸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20년간 글쓰기를 해온 외국 작가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20년을 글만 써도 글쓰기의 육중함은 똑같다. 그 부담을 덜기 위해 생각한다. ‘내 글은 어차피 쓰레기다. 가다듬기 전에는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런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다. 그러니 일단 써 놓고 보자.’라고.
그로부터 글쓰기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펜을 들기 전, 고민만 하다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고민의 시간이 길다고 더 좋은 주제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자꾸만 손을 멈춘다고 유려한 문장이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후회만 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일단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써놓은 글이 별로면 나중에 고치면 된다. 글을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김훈이나 도스토옙스키 수준의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읊조림에 불과한 글을 쓸 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쓰기의 부담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때마다 글이 시작되는 주문을 외우면 된다.
‘오늘도 한 편의 쓰레기를 적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