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레기를 한 편 쓰자

글쓰기 대가도 시작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by 임희걸

글쓰기는 참 이상하다. 수년간 글을 썼지만 아무리 써도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쓰기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힘들다.


그런 내게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김민식 작가를 만난 순간이다. 김민식 작가의 원래 직업은 MBC 드라마 PD였다. 여러 권의 책을 내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는 글쓰기 고수였다. 나는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김민식 작가를 만났다.


그는 노조 부위원장으로 MBC 파업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지방의 발령지로 좌천당했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회사의 압박 속에서도 글쓰기라는 희망을 붙잡은 덕분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글쓰기와 책 집필은 벼랑 끝에 몰린 그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글이 삶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그 말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약 1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고 평소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냥 솔직한 고민을 질문 속에 털어놓았을 뿐이다.


“좋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잘 써야지 하고 생각하다 보니 도무지 시작하지를 못하겠어요. 써야지, 써야지…. 하고 되뇌다 일주일이 가고 이 주일이 흘러갑니다. 저, 어쩌면 좋을까요?”


우문현답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의 답이 너무나 훌륭했다. 그는 글쓰기의 초보든 고수든 글을 쓰는 모든 이가 똑같은 고민을 한다고 했다. 김민식 작가 본인은 물론, 글로 먹고사는 전업 작가들도 쓰기 직전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brad-neathery-XrSzacdYbtQ-unsplash.jpg


“그래서 저는 이런 방법을 씁니다. 쓰기 직전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거죠. ‘오늘도 쓰레기를 한 편 쓰자.’ 이렇게 말이에요.”


그 간단한 한 마디가 얼마나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었는지!


이건 김민식 작가가 생각해낸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20년간 글쓰기를 해온 외국 작가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20년을 글만 써도 글쓰기의 육중함은 똑같다. 그 부담을 덜기 위해 생각한다. ‘내 글은 어차피 쓰레기다. 가다듬기 전에는 남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런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고칠 수도 없다. 그러니 일단 써 놓고 보자.’라고.


그로부터 글쓰기의 속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펜을 들기 전, 고민만 하다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고민의 시간이 길다고 더 좋은 주제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자꾸만 손을 멈춘다고 유려한 문장이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후회만 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일단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써놓은 글이 별로면 나중에 고치면 된다. 글을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김훈이나 도스토옙스키 수준의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읊조림에 불과한 글을 쓸 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쓰기의 부담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때마다 글이 시작되는 주문을 외우면 된다.


‘오늘도 한 편의 쓰레기를 적어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꼬박꼬박 찾아오는 글쓰기 슬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