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글 vs 전문적인 글
전문적인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했다.
에세이보다 전문적인 글이 더 훌륭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에세이 분야에는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너무 많다. 참 별 것도 아닌, 의식주와 관련하여 주제를 잘도 뽑는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먹는 것, 입는 것, 카페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담는다. 누구나 겪는 하루의 소소함에 절묘하게 의미를 담는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주제 자체는 별 것 아닌데 정말 맛있게 글을 요리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이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개중에는 스스로 글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즐겁다는 사람도 있다. 잘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며 쓰니 버티는 힘으로 쓰는 사람보다는 잘 쓸 수밖에 없다. 나는 일상의 소소한 스토리를 다루는 작가 중에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가 더 많다고 결론 내려버렸다.
내 경우에는 한 번도 글이 즐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 글은 쓰는 쪽보다는 읽는 쪽이 즐거웠다. 앎의 기쁨이랄까... 책을 읽고, 의미와 통찰이 담긴 글을 읽으면 쾌감을 느낀다. 그게 좋아서 다독을 할 뿐이었다. 꼭 글을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읽기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받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읽기의 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벽이다. <진짜 내 생각>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이왕 글을 쓰는 거, 책 한 권 내보자 생각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9년이 흘렀다. 약간의 글을 쓰고 책도 한 권 냈지만 9년 전에 비해 바뀐 게 없다. 글쓰기는 나에게 여전히 무거운 노동에 다름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냥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에세이스트와 정면 대결을 피하기 위해 나는 <전문적인 글> 쪽을 선택했다. 물론 글 자체의 흥미가 덜하기 때문에 독자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주제 자체의 뾰족함이 있으니 글솜씨의 부족을 매워주리라 생각했다. 경영학, 심리학 서적에서 이론적 근거를 끌고 오면 쉽게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결론 내렸다.
그러다 충격적인 블로그 글을 만났다.
"전문적인 글을 잘 쓰려면 일상적인 글로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전문성을 지닌 글이라 일상 속의 글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글은 꾸준히 쓰는 게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글쓰기 양이 질을 담보하는 법입니다. 매일 글쓰기 연습을 하는 데는 일상적인 글이 더 낫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고 나면 전문성 있는 글도 어렵지 않습니다."
내 글이 왜 늘지 않는지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은 이야기였다. 나는 <전문성>이라는 미명 하에 그럴싸한 글감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연히 다른 작가들에 비해 글의 수가 적다. 양적으로 충분한 훈련이 되질 않으니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거였다.
그렇다고 교수님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된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관련 이론을 찾고 내 경험 속에서 사례를 떠올리느라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논문처럼 풍부한 참고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고작 브런치 글 한 편 쓰면서 몇 주씩 허비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소재를 다뤄보자고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직장인이 일의 고수가 되는 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고수를 키워내기 위해 리더나 조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쓰려고 노력했다. 스스로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좀 더 폭넓은 작품 경험이 필요하다.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라도 쓰는 게 중요하다. 검술의 초보가 무슨 유파의 검술인지, 얼마나 많은 적을 쓰러뜨린 검술인지 따지느라 수련을 게을리 한 셈이다. 이게 과연 맞는 길인지에 앞서 어디로든 걸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비뚤빼뚤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