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개인주의의 수준

개인주의와 협력, 적절한 리듬에 대하여

by 임희걸

단절의 시대.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모든 집단을 두 가지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아군과 적, 그 외에는 없었다. 이분법에 따라 언론도 우리 편, 상대편으로 나누어졌다. 여론이 분열되고 국민도 자신의 정치색에 따라 서로 적이 되었다. 비단 미국에서 벌어진 현상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서로를 멀리하고 상대를 증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은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들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다극주의로 끌고 가고자 하는 것이 러시아의 속셈이다. '강한 러시아 만들기'라는 슬로건은 지역 강대국이 다수 존재하는 다극 체제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정치분석가들은 러시아가 다극 체제를 꿈꾸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해석한다. 앞으로는 분열과 대립의 시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시로 단절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세계는 지금 지역, 민족, 조직의 경계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 속에서 개개인은 소속감이 박탈되고 혼자 남겨진다. 일하는 방식도, 삶의 모습도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각자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같은 삶의 방식은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분화된 가치관에 따라 소그룹을 오고 간다. 조직의 힘이 약해지고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라도 다른 사람과 연결할 수 있어지면서 개인의 힘이 강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금융 거래, 물건 주문, 음식 배달까지 불가능한 영역이 없어졌다. 이제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이런 시대에 <관계>는 얼마나 값싼 가지가 되었는가.


굳이 조직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늘고 있다. 팀이 왜 필요한가? 가족이 왜 필요한가? 과연 친구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인가? 불필요한 노력이 필요한 인간관계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는 책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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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역량 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각 직무별로 일 잘하는 사람은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이다. 일 잘한다는 사람을 뽑았다. 그들이 어떤 지식, 기술, 태도를 가지고 일하는지 분석했다. 교육담당자였던 나는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역량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어떻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하게 되었나요?" 프로젝트 틈틈이 선발된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모두 혼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성장했다고 대답했다.


“선배 하나가 나를 끼고서 모든 것을 전수해줬지.”

“퇴근 후에도 회사 동기와 둘이서 마케팅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습을 했어요.”

“팀장님이 직원 육성 프로그램이라며 일 외에 별도 과제를 줬어요.”


일의 고수 중 누구도 혼자서 성장한 사람은 없었다. 전문 지식을 쌓는 일이라면 혼자서 가능하다.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보고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일에 적용하는 과정은 다르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일하는 센스>는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된다.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시행착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집단이 함께 실험을 하고 고민하여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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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화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혼자는 살아 수 없다’라는 명제는 여전히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1인 기업가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비즈니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누구의 손도 빌리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원하지 않는다고 아무리 우겨도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옥스퍼드 대학의 로빈 던바는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을 이루고, 집단은 어떻게 지혜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학자다. 던바의 연구팀은 업무 시간 중 일류 과학자들의 동선을 추적했다.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동료와 대화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모든 행동을 세세히 관찰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획기적 발견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자생물학 같이 첨단 과학 분야일수록 외롭게 일할 것이라 추측한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밤늦게까지 홀로 연구에 몰두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전자 현미경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알았다'며 발견을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뛰어난 업적일수록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 곳은 회의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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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운 가설을 혼자서는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쉽게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동료와 함께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상호작용하는 대화는 문제를 새로운 맥락으로 보게 도와준다. 동료로부터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가설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생각의 덫에서 빠져나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오류를 발견한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보태며 이론이 점점 정교화된다.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이런 과정을 거친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화를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이전처럼 조직이 우선시 되고, 단순히 협동을 강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보다 집단이 중요하다.'라는 무조건적인 협동 강조는 거부감만을 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때로는 혼자 집중하고, 때로는 누군가와 협업을 하는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때그때 적절한 일의 리듬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일처리와, 혼자서 집중하는 일처리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구사하도록 애써야 한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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