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졌지만 조직 적응력이 부족했던 K 사원
10여년 전 입사한 K는 수학에 재능이 있었다. 신은 한 분야에 재능이 있으면 다른 재능은 잘 주시지 않는가 보다. K는 ‘조직 적응력’이 부족한 친구였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내뱉었다. (조직은 이런 행동을 꽤 불편해한다)
당시 우리 회사는 회의실이 부족했다. 회의를 줄이는 게 답이련만, 윗분들은 회의를 줄일 생각이 없었고 팀의 막내들은 서로 회의실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회의실 예약 시스템을 만들면 모두 해결됩니다.”
K가 총무팀 차장에게 제안했다. 총무님 차장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괜한 일을 벌이지 않을 이유를 떠올렸다.
“고작 회의실 4~5개 가지고 전산 시스템을 만들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사장님이 우리 회사가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직원이 더 많이 늘어나면 회의실도 급격히 늘겠죠.”
“그때나 검토해 볼까, 지금은 안 된다니까 그러네!”
K 사원은 이번에는 자산운용팀 과장에게 전화했다.
“비상장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에 투자하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텐데요. 안정적인 채권 투자 비중이 너무 높은 것 아닐까요?”
“고객의 돈을 그렇게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면 되겠어?”
“리스크 관리를 하시면 되잖아요. 수익률과 위험성이 모두 안정적인 자산에만 투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자산운용 전문가면 위험을 관리해서 수익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안 된다니까 그러네….”
그의 제안을 받는 사람들 모두 논리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서도 무조건 안 된다고 역정을 냈다. K는 끊임없이 회사의 업무 절차와 관행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오래전 이야기라 지금은 그의 제안이 거의 다 현실화되었다.
나는 조직에 괴짜가 많아야 조직이 산다는 책을 읽고 K를 응원하며 유심히 관찰했다. 괴짜는 조직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다양성은 창의, 혁신과 직결된다. 혁신을 위해서는 지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양성이 결핍된 집단은 매번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만 한다. 다양성이 풍부한 조직은 새로운 관점에서 답을 찾아갈 가능성이 크다. 책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조직은 괴짜를 품지 못했다.
K는 몇 년만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야기가 드라마틱하려면 그를 괴롭히고 따돌린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대놓고 괴롭힌 사람은 없다. 다만 조직이 그의 개성을 참아내지 못했다. 집단은 개인을 외면했고, 의지하고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진 K는 스스로 사직서를 던졌다.
기존의 상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발상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는 인재
남들이 기피 하는 문제에 변화, 개혁을 선도하려는 모험 정신을 가진 인재
이건 국내 최고의 기업이라는 한 회사의 인재상이다. K 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지 않은가? 실제로는 이런 직원은 쓸데없는 일을 만들고, 조직을 시끄럽게 만드는 불평 불만자로 낙인찍힐 뿐이다.
일사불란이 미덕인 한국 사회
조직이 새로운 세대 때문에 몸살을 앓는 <MZ 세대 현상>이나, 직장 내 괴롭힘, 미투 등은 모두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부족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성장통에 해당한다.
여전히 우리의 조직은 모범적이고 조화로운 인재만을 찾는다.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빨리 성과를 낸다.’라는 대다수 한국 기업의 명제 앞에서 어떻게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귀담아듣고, 소수의 의견을 채택할 수 있을까. 누군가 피해자가 생기고 소수 그룹이 소외되고 있을 때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나스닥은 상장기업에 2가지 의무를 부과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첫째, 이사회 멤버로 한 명 이상의 여성과 한 명 이상의 소수인종이나 성소수자를 임명해야 한다. 둘째, 이사회 멤버의 다양성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나스닥은 과연 왜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을까? 다양성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성과를 끌어올린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 분야의 여러 논문은 물론, 포천 500대 기업들도 다양성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기술력이나 교육 수준, 빠른 실행력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면 기술력을 더 높이거나 실행 역량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는 저서 <축적의 길>에서 우리 산업계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으면 변화하지 않으면 이대로는 더는 발전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가 다음 성장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 개념설계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개념설계는 한 분야의 다양한 시행착오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다. 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 다양한 생각,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K-콘텐츠는 우리 자신의 추한 민낯을 재료로 삼는다
지금 K-콘텐츠에 대한 세계의 반응이 뜨겁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DP, 괴물 같은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이 콘텐츠의 공통점은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다는 점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부조리, 군대 조직의 부조리, 광신적인 종교 집단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추한 민낯을 비아냥거림으로써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이런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는 뉴욕에 딱 한 번 가봤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월스트리트였는데 금융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키워 온 터라, 월스트리트는 내게 꿈의 장소였다. 실제로 가보니 길 Street이 서울보다 좁았다. (이건 몇백 년의 역사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치자) 월스트리트의 상징은 증권거래소 앞 황소는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서 수컷 황소의 그곳(?)만 반들반들 한 상태였다. (이런 행동은 세계 공통인가보다) 수년간 미국은 나에게 자본시장에 대한 환상을 주입했다. 대부분은 미국에서 온 콘텐츠의 영향이었다.
미국의 콘텐츠는 그걸 소비하는 세계인에게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미친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우리는 은연중에 미국 문화를 배우고 동경한다. 그런데 K-콘텐츠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오징어 게임을 재미있어하지만, 한국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조직의 부조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군대다. DP라는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는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마치 좋은 평가 같지만, 아니다. 군대를 제대한 지 15년, 20년이 지난 사람도 현재의 군대 문제에 공감한다는 건, 수십 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어떻게 20년 전 내가 군대에 있을 때랑 똑같냐.” DP를 본 남자들의 한결같은 한탄이다.
후임병을 괴롭히는 방식, 집단이 개인을 공격하는 방식이 수십 년 전과 같다. 그동안 시설이 좋아지고, 무기가 개량되었는지는 몰라도 군대 문화는 조금도, 아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군대가 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위험 요소로 여기지 않고, 용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의 개성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감내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개성을 존중하면 더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없어질 것이다. 내 지시가 일사천리로 실행되기를 바라는 리더에게 어수선한 조직은 개선의 대상일 뿐이다.
다양한 제안은 단기적으로는 일이 늘어나게 만든다. 단순히 일을 빨리 해 내는 것이 목표인 조직이 새로운 일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제안 내용이 좋건 나쁘건, 그걸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그냥 묻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제안을 뭉개버릴수록 추가적인 비용 소요가 없어지므로 담당자는 KPI를 달성하게 된다.
부조리가 심각하다면 그것을 고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한국이 K-콘텐츠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을 넘어 ‘되고 싶은’ 나라가 되려면 사회와 문화의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는 효율성과 속도를 중요시했다면 이제는 다루기 어렵지만, 꼭 필요한 가치인 다양성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느 작가의 북 토크에서 들은 말이다.
“선진국의 공통점은 각자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점이에요. 누군가는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원하지만, 다른 이는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죠. 또 누군가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선택합니다. 어떤 것이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죠.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닌 것 같아요. 모두가 똑같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