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이 성과를 만든다

이래서 나쁜 리더가 사라지지 않는다

by 임희걸

사교육을 맹신하는 강압적인 엄마


우리 동네에는 아이의 하루를 10분 단위로 관리하는 엄마가 있다. 언제 학원을 가고 숙제는 얼마큼 했는지, 매일 정해진 공부량을 달성했는지 철저히 점검한다. 아이가 정해진 학습량을 못 따라가면 분노에 찬 비난이 돌아온다. 시험을 못 보았을 때는 시험지를 찢어 얼굴에 던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찌감치 사교육을 시작했고,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두가 반대하는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웃 부모들은 그런 식으로 아이를 키우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은영 박사가 봤다면 심각한 문제 가정으로 꼽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성과가 좋다. 아이는 성적이 매우 뛰어나다. 공부만 잘하고 성격이 괴팍하면 성과라고 말할 수 없을 텐데, 성격도 무난한 편이다. 억압적인 환경을 이겨내며 잘 자란 셈이다. 이런 점이 모두를 할 말 없게 만든다. 처음에는 이 아이를 보고 어쩌다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형이 있는데 동생보다도 훨씬 공부를 잘한다. 성실하고 꾸준한 성격이라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것은 무난해 보였다.


방법은 분명 잘못되었는데... 성과가 나온다. 이 때문에 빠르고 과격한 방법이 사라지질 않는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라,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라, 이런 주장을 담은 책과 강연은 셀 수가 없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주변에 한둘은 꼭 폭군형 부모가 있다. 매사에 그렇게 아이를 억압한다면 당연히 버티지 못할 것이다. 평소에는 보통의 부모와 같다가 학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돌변하는 케이스가 많다. 주변에 그런 부모가 있으면 어느새 나의 육아도 영향을 받는다.


"저 집은 저렇게 까지 시키는데, 우리는 너무 오냐오냐 하는 것 아닐까? 이러다 경쟁에서 뒤처지고 공부 못한다고 자괴감에 빠지면 어떡하지? 적당히 놀고, 친구들도 사귀며 정서적으로도 충만한 생활을 하며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성적이 부진해서 자신감을 잃는다면 그게 맞는 길일까?'


대한민국의 사교육은 부모의 불안을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누군가 사교육비를 쏟아부으며 높은 성과를 보여주면 옆 사람의 불안은 켜져 간다. 결국은 마이너스 재정을 감수하며 사교육 경쟁에 돌입한다. 폭군형 부모는 아이뿐만 아니라 사교육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성과가 나온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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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폭군형 리더


우리 회사에도 폭군형 리더, T 본부장이 있었다. 그에게 찍히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적서를 받아낸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실제로 몇 명 인가는 본부장에게 낙인찍혀 좌천되거나 회사를 떠났다. 시범 케이스로 몇 명이 칼을 맞자, 모두가 그의 앞에서 충성 맹세를 하기 바빴다. 앞에서는 충성을 외쳤지만 술자리에서는 험담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직원들의 불만이 가장 높던 시기였다.


하버드 대학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책을 펴냈다. 오랫동안 조직 문화를 연구해 보니, 실패에 대해 질책하지 않는 문화를 가진 조직이 더 창의적인 결과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창의성의 시대가 아니던가.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을 통해 세상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조직이 성공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되고, 디지털화가 기업의 화두가 되면서 휴머니즘 경영이 대세가 된 듯하다. 직원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사를 경청하며, 자율적으로 일하게 해 주어라. 그러면 세상에 없던 놀라운 성과가 나올 것이다. 이게 휴머니즘 경영의 핵심이다.


안타까운 점은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조직 또한 꽤 성과가 잘 나온다는 것이다. 폭군 T 본부장은 드라마틱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가 임원으로 부임하자 경영 성과가 크게 개선되었다. 최고 경영진은 임원 평가에서 최고점을 주었다. 물론 직원들의 불만은 나날이 높아졌다. 폭군은 그런 상황을 이리 여러 번 겪었던 듯이 높은 경제적 보상을 제시했다.


"본부장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든 회사가 성장하고, 성과급도 두둑이 주어지네. 이러면 나쁘다고만 할 순 없는 거 아냐? 난 더 이상 그분 욕은 하지 않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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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일은 성과창출!


날이 갈수록 리더십의 인기가 높아진다. 리더십에 대한 책이나 강연이 쏟아진다. 우리는 당연하게 조직에는 훌륭한 리더가 필요하다고 간주해 버린다. 왜 리더십이 필요한가? 훌륭한 리더가 없는데도 그럭저럭 굴러가는 조직도 많다. 당신의 회사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탁월한 리더는 없지만 조직은 그럭저럭 굴러간다. 그럼 왜 훌륭한 리더십이 필요한가?


한 세미나에서 강연자는 리더십의 핵심 목적으로 <성과창출>을 꼽았다. (미국식 경영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였다.) 리더가 리더십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은 결국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인품이 훌륭하고 직원들이 좋아하는 리더가 있다. 참 사람은 좋지만 나날이 조직의 성과는 나빠진다. 아무리 리더가 훌륭해도 성과가 나쁘면 조직에는 불안감이 감돈다. 매출이 줄어들고 적자가 나는데 언제까지고 웃는 얼굴일 수 있겠는가. 강연자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리더십이란 내게 참으로 달콤한 단어였다. 좋은 리더를 만나 성장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했더라도 언젠가는 그런 시기가 올지 모른다고 믿었다. 이상형을 만나지 못했다고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다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질 않나. 그래도 언젠가는 이상형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기대가 숨어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모두가 결국 조직의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늘리기 위함이라고 들으니 가슴속에서 뭔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리더십이란 잘 부려먹기 위한 스킬과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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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는 늘 빠른 것이 선택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직을 두려움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맞다는 말은 아니다. T 본부장이 떠난 후 우리 조직은 갖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수년간 T 본부장이 두려워서 직원들은 선뜻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가 없는데도 그런 자신의 생각을 감추는 문화는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문제가 더 깊어지고 곪아갔다.


T 본부장은 실패에 대한 질책을 심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책임을 맡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일은 서로 맡기를 기피했다.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그 일은 우리 부서 일이 아니라고 싸우기 일쑤였다. 여러 사람, 여러 부서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 대부분인데 아무도 맡지 않으려다 보니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단기 성과를 위해 장기적인 일하는 체계가 훼손된 셈이다. 앞에 이야기한 폭군형 엄마에게도 이런 일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부작용이 드러날지 모른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인해 쌓인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깊숙이 감추어져 더 큰 상처가 될 뿐이다.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곪고 덧나 더 큰 질환이 된다. 미래 어느 때인가 암덩어리가 되어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때는 이미 치료 불가능한 상태가 된 이후다.


모두가 알지만 어쩌겠는가. 장기적인 폐해가 있다 하더라도 조직에서는 늘 단기적이고 효과가 빠른 방안이 선택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좋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기보다 윽박지르고 화를 내서라고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어 진다.


사람들이 적당히 먹고, 꾸준히 운동하고, 술이나 담배를 절제하면 치명적인 질병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든다. 슬프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오래 걸리는 옳은 길보다는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빠른 길을 선택하는 법이다. 당장은 성과가 없는 자애로운 리더보다, 구성원을 쥐어짜 다음 달에 성과를 내는 리더가 더 선호되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사에서 나쁜 리더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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