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라면 계획대로 좀 일해주세요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기조 강연으로 한국인 구글러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구글로 이직하기 전 S 전자에 다녔다고 했다. S 전자에서는 회사에서 의무로 받아야 하는 교육일지라도 교육을 가기 전날 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면 팀장들은 짜증을 내곤 한다.
"한창 바쁠 때인데 이런 때 교육이야? 뭐 의무라니 어쩔 수 있나. 알겠어 갔다 와!"
그러면 팀원은 마치 큰 죄라도 진 마냥 눈치를 보며 교육에 참석한다. 내가 가고 싶다고 신청한 교육이 아니라 회사에서 강제하는 교육인데도 죄책감은 나의 몫이다. 우리 회사에서는 지금도 이런 풍경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인사팀에서 교육 공문을 보내고, 분명 우리 팀장도 결재를 했다. 그런데 팀장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교육을 간다 하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래서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렵다.
그가 구글에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어, 2주간 경력 사원 입문 교육을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마치 한국에서 하듯 자리를 비우기 전날, 매니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매니저는 오히려 의외라는 듯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왜 나에게 교육 일정을 보고하죠? 이미 당신의 2달치 스케줄은 일정 공유 시스템을 통해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고나 예외가 생기지 않는 한 여기서는 번번이 자기 일정을 누군가에게 보고하지 않습니다. 시간 아깝게 그런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왜 하나요?"
그 말을 듣고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원래 조직이란 이랬어야 했다. 당연히 정해진 계획에 따라 일하고 팀장이건 팀원이건 그 일정을 동료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럼 누군가가 왜 자리를 비웠는지, 언제 돌아올지 묻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돌아갈 것이다.
심지어 구글에서는 직원의 회의 참석 일정도 3~4주 치의 계획이 모두 짜여 있다고 했다. 그 일정을 바꾸고 새로운 회의에 직원을 참석시키려면, 해당 직원은 물론 참석자 모두에게 양해를 모두가 가능한 시간으로 회의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팀장이라 하더라도 계획에 없는 회의를 개최하거나 맘대로 일정을 바꿀 수 없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업무 방식이었다. 나는 요즘에도 하루에 몇 번씩 예상치 못한 회의에 불려 다닌다. 특별한 준비나 안건도 없이 2~3시간씩 회의가 이어지므로 2번 정도만 회의가 있으면 하루가 끝나버린다. 회의의 성과라도 있으면 좀 나으련만, 회의는 아무 결론 없이 끝나는 때가 대부분이다.
"흠... 쉽게 답이 안 나오겠구먼... 다음에 다시 회의합시다."
더 나쁜 건 대상자가 명확지 않다는 점이다. 팀장은 회의에서 논의할 일의 범위, 회의를 끝낼 시간, 예상되는 결과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회의를 소집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은 다 불러들인다. 한창 일해야 할 직원들 모두가 2~3시간씩 업무가 중단된다.
"혹시 모르니 예산 담당인 최 대리도 들어오라고 하지. 혹시 예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그러고 보니 안 과장도 필요하겠는데. 안 과장이 마케팅 결과 분석 담당이잖아. 자료 분석과 관련된 부분이 있을지 몰라."
이렇게 추가하다 보면 나중에는 팀원 전부가 회의에 소집되기 일쑤다.
잘 맞추건 잘 맞추지 못하건 우리에게는 예측하려는 습성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 내 주변에는 주식 투자를 하면서 올해 말 주가지수를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많다. 동료 중 하나는 3년 뒤에 틀림없이 비트코인 시세가 2배가 되어있을 것이라 떠들고 있다. 다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려 든다.
진화 과정에서 예측 능력은 다가올 위험을 피하고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예측을 잘하는 집단은 상대적으로 생존 확률이 더 높았다. 풀숲의 흔들림, 미묘한 냄새, 이상한 낌새... 이러한 작은 신호를 읽어내고 맹수가 나타날지 예측한 부족은 살아남았다. 반면 무서운 동물의 출현이나 다른 부족의 침입을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않은 부족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진화 과정에서 이런 일을 겪으며 우리에게는 예측의 욕망이 생겨났다. 어떤 일이든 미리 예측하려는 습성이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예측한 대로 흘러갈 때 편안함을 느끼고 만족스러워한다. 반대로 예측할 수 없는 일에서는 커다란 고통을 느낀다.
심리학자들이 예측에 관련된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는 예고 없이 전기 자극을 가해 고통을 주었다. 다른 그룹은 전기 자극을 주기 전에 고통이 있을 거라고 예고를 해 주었다.
전기 자극은 똑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그룹은 고통을 덜 느꼈다. 계속된 실험 속에서도 고통을 더 잘 견뎌냈고, 실험이 끝난 후 전기 자극으로 받는 아픔이 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예측을 할 수 있으면 인간은 고난을 더 잘 견뎌 낼 수 있다. 폭우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일기예보가 정확하면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팀장이라면 응당 월간 계획, 주간 계획을 세우고 반드시 그 계획을 팀원과 공유해야 한다.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놀랜 점 중 하나는 커다란 조직이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연간 사업계획이 있고, 월간 업무 일정이 있으며 주간 계획에 따라 일을 진행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업계획은 매달 바뀌기 일쑤고, 월간 업무 일정은 들쑥날쑥했다.
물론 회사는 직원들에게 주간업무 계획을 제출하라고 하고 점검하는 척을 한다. 문제는 리더였다. 임원이나 팀장이 자신의 일정을 공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중요한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본부장이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몰라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갑자기 회의를 소집하고, 당장 하지 않아도 될 업무를 들쑤시는 팀장도 많았다. 업무와 직원의 성장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팀장은 거의 드물었는데, 어떤 때는 갑자기 피드백을 한다며 팀원을 번갈아가며 면담을 하고 시간을 잔뜩 소모하기도 했다.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대로 진행되면 어떤 피드백도, 어떤 회의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예고 없이 이루어지는 피드백이나 회의는 내용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짜증이 난다.
혼자 일을 할 때는 계획이 없어도 그때그때 잘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함께 일을 할 때는 그렇지 않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배를 끌고 가는 선장을 따라 목숨을 걸 선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