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향상의 결정적 시간과 완급 조절
나는 보험 회사에 다닌다. 보험사의 자산운용은 자산운용사에 비해 더 장기적인 수익을 지향한다. 포트폴리오도 더 다양하게 구성된다. 채권 투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주식, 부동산 상품에도 자산을 배분한다. 때로는 금리 파생상품이나 도로, 항만 건설 같은 인프라 투자 상품도 편입한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운영하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든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기관투자자가 개인투자자를 이기 때가 많다. 단순히 투자 스킬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마다 수익 가능이 높은 자산군에 다양하게 투자하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식 전문가는 사람은 주로 주식 투자를 하고 부동산에서 큰 수익을 올린 사람은 이후에도 부동산에 투자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성과를 내기 쉽다. 이것저것 좋다는 투자처에 모두 손을 대면 손실을 입기 일쑤다.
아무리 해도 주식 투자로 돈을 벌 수 없는 시기가 있다. 요즘 같은 때가 그렇다. 각 나라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주식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신을 주식 전문가라고 여기고 증시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손실을 입은 지인이 많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가졌다면 더 나은 성과를 경험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관 투자자처럼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바꿔가며 투자해야 한다. 일에서 실력을 쌓아야 할 때가 있다. 회사에 들어오고 3~5년 차가 되기 전까지가 그런 시기다. 이때는 업무 실력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 결혼을 했다면 가정의 좋은 문화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자. 아이를 낳았다면 당연히 육아가 최우선이 된다.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 회사에만 매달리거나, 일의 실력을 키워야 할 때 취미에만 치중하다 보면 결정적 시기를 놓치게 된다.
신입사원 시절 W 과장님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당구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초절정 고수의 수준인 500점을 쳤기 때문에 하수인 나는 감히 상대할 수 없었다. 간혹 당구장에 따라가면 선배들이 당구 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선배들이 시켜주는 중국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번은 W 과장님이 일과 당구의 공통점이라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반인 중에는 500점을 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500이라면 이 바닥에서는 신선 수준이지. 내가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니?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기 직전, 친구가 아버지 당구장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지. 그 친구 덕분에 6개월 동안 당구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하루 종일 당구만 쳤지.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당구를 쳤으니, 하루에 13~14시간 정도 연습을 했을 거야.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프로 수준의 실력이 되어 있더라고."
"어떤 기술이나 전문 지식을 쌓아야 할 때는 집중적인 연마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신입사원 때 고객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을 맡았었지.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매일 저녁 대학생인 여동생을 고객으로 앉혀놓고 연습을 했어. 30분 동안 내 피티를 들으면 내가 동생에게 용돈을 만원씩 줬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 가슴이 감동으로 차오른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네가 나에게 만원을 다오 그렇게 얘기했지. 5개월 정도 그렇게 매일 반복했더니... 어느 날은 피티가 끝났는데도 동생이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고. 그러더니 내게 만원을 줬지."
미친 듯이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 입사 3년 차에서 7년 차 정도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쳐내도 새로운 일이 생겨나는 속도가 빨랐다. 제때에 퇴근할 수도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일에 파묻혀 있다가 간혹 정신을 차릴 때면 내가 한 일을 돌이켜 보곤 했다. 어느새 업무 처리 속도도 빨라지고, 완성도도 높아져 있었다.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조직의 리더들은 일에 몰입하라고만 강조한다. 그게 조직을 위하는 길이나 너를 위한 길이라고. 일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몰입도 좋고, 성장도 좋지만 분명 일은 개인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휴식이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의 주입이 없다면 금방 탈진하게 된다. 집중의 시기가 필요하되, 지나치면 안 된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면서 조직에서 인정받는 사실에 기뻐하는 후배가 있었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고 싶은 생각에 야근을 반복하며 전혀 놀 줄을 모르는 후배도 있었다. 글은 갑자기 이런 말을 던지곤 했다.
"저 사직서 썼습니다. 유학이나 가려고요. 3년 뒤, 5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요."
인생도, 직장 생활도 마라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거리 선수처럼 전력 질주해서는 안된다.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고 지나친 체력 소모를 방지해야 한다. 평탄한 직선 주로라면 조금 속도를 내 기록을 단축시켜도 괜찮다. 중간중간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며 긴 시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게 프로다. 마라톤에서 아마추어는 기록 수립은커녕 완주 조차도 어렵다. 완급 조절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 멈춰야 할 때인지,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인지 모를 수도 있다. 아니, 모를 때가 더 많지 않나 싶다. 그럴 때는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답이다. <읽기>와 <쓰기>다.
나는 길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책을 펼쳤다. 책이 바로 답을 던져주거나 쉽게 방향을 알려준다는 뜻은 아니다. 길을 알려줄 책을 찾지 못해 몇 주씩 책만 보는 때도 있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물음을 잊지 않고 읽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해답을 만나는 때가 많았다.
상황이 복잡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면 쓰는 쪽을 추천한다. 신기하게도 고민을 적어 놓고 파고들다 보면 문제의 핵심이 금방 보인다. 머릿속의 문제는 막연한데 비해, 써 놓으면 좀 더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글로 쓰다 보면 삶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느낌이 든다. 고작 이런 문제였는데 내가 이토록 고민을 했나 오히려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읽기와 쓰기로 현재 어느 곳에 투자 비중을 높여야 할지 알았다면 인생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길 바란다. 내 경우에는 자녀가 포트폴리오의 중심이다. 요즘 아이가 6학년이 되면서 학업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노력은 많이 하는데 왜 성적이 따라주지 않느냐며 속상해한다. 학습 습관의 문제를 파악하고 아이의 짐을 함께 지기 위해 아이와 같이 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골프를 배워야 할 때가 아니냐고 권한다. 코로나도 끝나가고 관계 관리를 위해 회식 자리를 많이 가져야 한다는 동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현재는 <아이의 학습>이라는 자산 비중을 높여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의 투자 철학대로 운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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