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처럼 일하기

때론 규정에 따른 일하기가 필요하다

by 임희걸

'공무원처럼 일한다.'


공무원분 들께는 죄송하지만 기업에서는 이 말이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예전 CEO 중 한 분은 자나 깨나 혁신을 강조했다. 설사 나쁘게 바뀌더라도 일단 바꾸는 쪽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와 이야기하는 직원이 조금이라도 기존의 방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일은 예전부터 관례적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공무원처럼 일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나!"


그가 자주 사용한 '공무원처럼 일한다'는 말은 혁신을 거부한다는 뜻이었다. 공무원처럼 일한다는 지적을 받는 직원은 한직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잦았다. 일부는 조직을 떠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은 그렇게 혁신을 강조한 리더가 사라지자마자 그가 추진한 혁신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잠깐 변하는 듯하다가 다시 관례와 기존의 일처리 방식으로 회귀하였다. 직원들은 혁신을 하기보다는 하는 척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 CEO 좋아하는 단어는 도전, 창의, 혁신, 변화였다. 그가 싫어하는 단어는 관례, 관습, 선임자가 해왔던 방식 등이었다. 경영에 대해 언급하는 어떤 책을 보아도 변화와 혁신이 미덕이라 강조한다. 그런 관례가 생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류는 선대의 지혜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지혜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문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것, 다른 것만이 미덕이 되어 버렸다.



창의를 강조하는 트렌드


언제부터였을까, 직장인에게 가장 강조되는 업무 태도는 <창의력>이다. 그 반대급부로, 규정을 준수하려 하고 절차를 지키려 하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왜 창의의 반대말이 철저한 규정 준수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틀을 깨고 생각하라는 점이 너무 강조되다 보니 기본적일 룰조차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왜곡된 것은 아닐까?


조직 내, 외부에는 일하는 방법을 정하는 여러 규칙들이 존재한다. 각종 법률, 행정 지침, 사규, 매뉴얼이 있다. 얼마나 많은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그렇게 많은 규칙이 생겨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창의와 속도를 중요하는 한국식 일처리 방식은 종종 규정 확인을 건너뛴다. 처음부터 꼼꼼히 규칙을 확인하면 외국에서는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한국에서는 일을 망치려 한다는 말을 듣는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기업에서는 규정 준수보다는 빠른 일처리를 미덕으로 삼는다.


체계를 갖고 일을 하기보다는 속도를 중요시하다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우리 회사에는 몇 달간 어마어마한 작업량의 프로젝트가 끝에 가서 뒤집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막상 관련 법률을 확인해보니 규제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 발견한 것이다. 미리 관계 법률을 검토했다면 이런 오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해당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업무 처리 속도가 늦다고 상사에게 핀잔을 듣기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있을까.


"애초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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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는 일정 금액 이상의 계약은 반드시 경쟁 입찰을 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직원이 이 규정을 잘 모른다. A 과장은 전임자의 전임자가 선정해 놓은 시스템 운영사를 계속 활용했다. 거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납품을 하는 회사도 계약 절차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스템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서 거래 규모가 늘어났다. A 과장은 입찰 과정 없이 V 개발사에 프로젝트를 맡겼다. 회사의 내부 감사에서 개발사 선정 과정에 오류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과장님, 계약 금액이 꽤 큰데, 공정하게 경쟁 입찰을 해서 개발사를 선정했어야죠."


"그동안 이렇게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큰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규의 관련 규정을 확인해 보셨나요?"


사규에 경쟁 입찰을 규정하는 항목이 있는 것을 보고 A 과장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순식간에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무능력한 직원이 되었다. 감사 결과가 팀장에게 보고되자 A 과장은 팀장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후로 팀장은 그의 일처리에 꼭 토를 달았다.


"혹시 모르니까 규정 확인해 봐. A 과장."



성장은 업무 프로세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 업에 취업한 후배들은 배울 것이 없다고 한탄하곤 한다. 이것은 업무 프로세스가 체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 내의 어떤 일이든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규모가 있고 체계가 잘 갖추어진 조직일수록 확실한 업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업무 프로세스는 여러 선배들이 해당 업무를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다. 물론, 그걸 잘 전달해주는 전임자도 있고 그냥 내팽개치고 가버리는 전임자도 있기 때문에 축적된 노하우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잘 정의되어 있고,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까지 준비되어 있다면 새로 일을 맡는 사람은 훨씬 수월해진다. 업무 처리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반대로 절차나 지침이 엉망이고, 돌발 상황에 대한 히스토리가 없어 나 혼자 부딪혀 가며 알아내야 하는 때도 있다. 이렇게 기존의 프로세스가 없으면 담당자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가 된다. 업무 지식도 경험도 부족한 상태에서 혼자서 좌충우돌하며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 업무 프로세스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스타트 업에서 이런 일이 잦다. 스타트업에서 신입 직원들이 탈진하고 떠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업무 프로세스의 부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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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의 성장이라는 것도 사실 업무 프로세스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조직이 축적해 놓은 업무 프로세스를 따라 일하다 보면 일하는 방법을 쉽게 습득할 수 있다. 게다가 어느 단계가 이르면 선배에게 받은 업무 프로세스를 스스로 업데이트하기 시작한다.


규정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므로 거기에 맞춰 일하는 방법을 바꾼다. 새롭게 개발된 전산 시스템이나 앱을 활용하여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다른 회사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업무 프로세스에 반영한다. 같은 회사 내의 다른 부서의 일하는 방식을 배우기도 한다. 업무 프로세스를 업데이트하는 레벨이 되면 그제야 스스로 제대로 일한다고 느끼게 된다.


창의적으로 일한다는 건 제로에서 완전히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업무 프로세스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쌓은 역량을 활용하여 프로세스를 새롭게 가다듬는 과정에 가깝니다. 거기에 작은 아이디어를 더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창의>가 된다. 그렇게 선배들이 쌓아놓은 업무 지식 체계에 내 것을 더해서 후배에게 물려주는 과정이 반복된다. 조직 내에 여러 사람이 이렇게 하면 그 회사는 <지식 경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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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규정과 지침에서 일이 시작된다


공무원의 일은 법률과 조례에 따라 진행된다. 정부의 업무는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정부 기관에 납품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공정한 납품 기준과 경쟁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런 기준이 없다면 뇌물과 비리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일수록 명확한 절차와 기준 없이 사람에 따라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결정권을 쥔 사람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뇌물을 쥐어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규정과 매뉴얼을 기초로 일한다.


사기업의 직장인에게도 규정에 따른 일처리는 똑같이 중요하다. 업무 프로세스의 기초는 관련 법률과 규정을 확인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규제로 묶여 있는 일만 제외해도 대충의 사업 방향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규정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규정이 만들어지는 목적과 배경이 있다. 과거에 특정한 상황을 경험하고는 또다시 그러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규정을 만든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어 있으면 규정은 가급적 간소화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에는 다 생겨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규정도 마찬가지다.


관계자를 접대했다는 명목으로 식당에서 법인카드를 자주 사용하는 E 팀장이 있었다. 감사 결과 법인 카드 결제의 상당수가 그의 집 근처에서 사용된 점이 지적되었다. 금요일이나 주말 저녁에 집 근처 식당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된 점으로 보아, 개인적인 용도가 의심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법인카드 소지자의 자택 근처에서의 카드 사용이 제한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특별한 규정이 쌓여있는 경우와 마주친다. 이걸 꿰뚫고 있으면 진정한 업무 고수가 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고수는 디테일에 강한 일처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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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마 지금 <창의>에 대한 아티클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으로 일할지 고민할 테지만, 어떻게 하면 규정과 매뉴얼을 철저히 습득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 전체가 새로움과 창의에 눈이 쏠려있어, 상대적으로 디테일에 관심이 떨어진다. 이런 때 디테일하게 일하는 사람이 더욱 각광받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이 말은 큰 것보다는 작은 문제가 전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를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한 건축가의 사망을 알리는 부음 기사에서 사용한 말이다. 아마도 해당 건축가가 디테일에 매진하여 훌륭한 건축물을 남겼다는 사실을 함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잘 풀리지 않는 것도 디테일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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