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와 축적의 시간을 배운다
단연코 취미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마음껏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꼽겠다. 실패는 위대한 스승이다. 하지만 조직은 실패를 꺼린다. 몇 번 실패하면 능력 없는 직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은 조심스럽게 하되, 취미를 통해 마음껏 실패하면 된다. 아마존은 실제 운영 시스템과 비슷한 가상의 시스템을 만들고 여기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 실패가 쌓일수록 아마존의 메인 운영 시스템은 완벽해진다.
1년 넘게 15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다. 서점에서 몇 시간 동안 책을 들춰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받아적었다. 내 글을 이메일로 투고했다. 상당수의 출판사는 ‘좋은 글이지만 저희의 편집 방향과는 맞지 않아서…’라고 시작되는 회신 메일을 보내왔다.
겨우 한 군데서 연락을 받았다. 편집자가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니 편집자는 내 글이 마음에 들어서 연락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출판 관련 일을 하는 분이라면 이런 외모겠구나 싶은 에디터는 이렇게 얘기했다.
"계약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뵙자고 한 겁니다.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야겠네요. 작가님의 글에는 허세가 가득해요. 어디서 이론을 잔뜩 가져와서 섞어 두었을 뿐,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어요. 그래서 너무 읽기가 힘듭니다. 열정은 있으니 글 쓰는 스타일을 바꾼다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편집자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내 진짜 실력이 그대로 발가벗겨진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당신네 출판사에는 흥미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돌아섰다.
몇 주간 그의 말이 잊히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150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모두 새로 썼다. 그로부터 다시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그 에디터와의 만남을 계기로 글이 많이 달라졌다. 새로 쓴 글에 대해 가장 많이 들은 평이 '술술 읽힌다.', '글이 쉽다.'라는 것이었다. 이전과 180도 다른 평이 나왔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실패가 없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제대로 실패를 해보아야 진짜 성공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적당히 실패하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어렵다. 취미에서는 얼마든 실패할 수 있다. 사실 취미에서처럼 마음껏 실패할 기회도 드물다.
조직은 실패를 극도로 꺼린다. 요즘 경영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추천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실패를 줄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막는 것이 경영자들의 관심사다. 직원은 실패하면 나쁜 인사 평가를 걱정해야 한다.
실패를 통해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으니 취미에서의 성장이 일에서의 성장보다 빠르다. 아는 형님은 주말에만 배드민턴을 치는데 2년 정도 연습하니 꽤 게임을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회사 일은 주 5일 동안 하루 8시간 이상 반복한다. 그런데도 3~4년이 지나도 실력이 크게 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시도를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도저히 악보를 읽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어서 악보 읽기에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악보를 보니 당혹스러웠다. 어떻게든 기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성인을 위한 계이름 읽기>라는 책을 샀다. 참 신기한 것이 나처럼 악보 일기를 어려워하는 어른들이 또 있나 보다. 그런 사람을 위한 문제집 형태의 책자가 나온다는 게 놀라웠다.
주말에 친구를 설득해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펼쳤다. 한 참 계이름 문제를 풀고 있었더니 친구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너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 무슨 회사원이 도서관까지 와서 악보 책을 보냐. 초등학생도 아니고."
완전 초보자가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때까지 음악은 예술이라고만 생각했다. 음악가는 영감과 느낌만으로 곡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악보를 공부하고 나니 음악이 참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느껴졌다. 이제야 음악의 참모습을 본 느낌이었다. 이후 클래식을 들을 때면 아름다움 외에 경외심이 느껴진다. 감동의 깊이가 달라졌다.
나는 리더들에게 경청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은 책이나 강연을 팔기 위한 상술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의 태도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경청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는 딱딱한데 느닷없이 "네 말을 경청할 테니, 한번 말해봐."라고 하면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상대보다 경험이나 직위가 우월한데 갑자기 경청하겠다고 해서 될 리가 없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대로고 리더의 태도에도 변함이 없다. 진짜 경청이 이루어지려면 리더가 달라져야 한다. 사람이 변하려면 종종 초보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초보가 되는 경험이 중요해진다.
초보를 경험하면 겸손해진다. 초보는 자기가 맞는다고 우기기보다 배우려는 자세를 갖게 된다. 초보는 배우기 위해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해 애쓴다. 새로운 취미는 우리를 완전한 초보로 만들어 준다. 아랫사람의 마음을 읽고 가까이 다가서고 싶으면 초보가 돼라.
대학 4학년 시절,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하겠다면 회계 학원을 어슬렁거렸다. 몇 년간 회계사 시험을 먼저 준비했던 선배는 그런 나를 보며 서둘지 말라고 조언했다. 최소 2년은 공부를 해야 합격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막 시작하여 자신만만했던 나는 선배에게 반문했다.
"잠을 줄이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면 1년 만에 합격할 수도 있지 않나요?"
"대나무는 순이 나오기 전까지 땅속에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을 거치는 법이다. 뿌리를 깊이 내려 높이 클 준비를 하는 거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동안은 전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막상 새순이 땅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면 몇 주 만에 사람 키의 몇 배가 될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모든 전문 고시에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관련된 용어에 익숙해지고 회계라는 개념이 직관적으로 인식되기에 걸리는 시간이지."
지금은 선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안다. 초보들은 그냥 열심히 하면 다 해결되리라고 말하지만, 고수에 이르기까지는 일정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취미, 어떤 스포츠든 죽음의 골짜기가 존재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기간을 말한다. 씨를 뿌리고 그 씨가 뿌리를 내리는 동안 기다려야 하는 시간인 셈이다.
축적의 시간이 없으면 성장의 시간도 오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참아내지 못한다. 새로운 운동이나 기술을 배울 때, 대부분이 이 죽음의 골짜기를 만나 포기한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은 어느 순간 한층 더 높은 수준에 다다른다.
취미 활동은 인생의 여러 단면을 닮아있다. 어찌 보면 취미란 인생을 압축해서 담아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바둑이나 장기는 전쟁의 축소판이다. 마라톤, 사이클, 철인 3종 경기는 인생의 굴곡을 닮았다. 롱보드를 타면서도 기술이 늘지 않아 좌절할 때는 시험을 망쳤을 때, 승진에서 빠졌을 때와 비슷한 좌절을 겪는다.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에 그걸 곰곰이 뒤돌아보고 곱씹기 어렵다. 인생을 성찰하는 시간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취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취미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은 덜 고통스럽다.
그래서 취미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