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배우는 방법

멘토, 스승, 성장일기

by 임희걸

취미나 일이나 한 분야에서 성장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우리는 일은 진지하게 대하면서 취미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취미에서 특정 분야를 배우는 법을 깨치면 일뿐만 아니라 어떤 배움도 쉽게 이룰 수 있다. 다만 어른의 배움에는 소년 시절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어른은 자존심이 세다. 타인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마음을 열고 스승을 찾아 나서야 빨리 익힐 수 있다. 어른은 쉽게 잊는다. 배움을 기록하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배운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다. 이건 다른 말로 하면 빨리 배우는 자가 승리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취미에서의 배움은 즐기면 된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을 즐기면 된다.



최고보다는 친절한 멘토가 필요하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잠깐 피아노 학원에 다닌 경험이 전부인 내가 다시 학원 문을 두드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내 기억 속의 <김O자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은 꽤 쌀쌀맞은 분이었다. 방금 가르쳐준 주법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한숨을 쉬거나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다그치곤 했다.


인터넷을 뒤져 찾은 성인 피아노 학원은 모 예술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교습을 직업으로 하는 선생님이 아닌, 음대 학생을 썼다. 군대를 갔다 와서 진로를 고민하던 4학년 남학생이 나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나이가 많은 학생이라 그런지 무조건 칭찬을 남발했다.


"선생님, 나이 들어서 피아노를 치려니까 손이 굳었나 봐요. 나름 연습하는데 도통 늘지를 않아요."


"이 정도면 엄청나게 잘 치시는 편이에요. 재능이 있으세요."


"재능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원장 선생님이 늘 재능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고 하셨는걸요? 없던 재능이 서른이 넘어서 생길 리가 있나요."


"아, 아마…. 잠재된 재능이 늦게 분출된 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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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억지 칭찬에 어이가 없었지만 듣기 싫지만은 않았다.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니 독주회를 할 것도 아니고, 콩쿠르에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불평은 그냥 나의 조바심일 뿐이었다. 음대생 선생님은 그런 나를 차분히 달래며 천천히 천천히 이끌어 갔다. 내가 4년씩이나 피아노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친절하게 나를 격려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었다.


시카고 대학의 벤저민 블룸은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의 어린 시절을 연구했다. 그들 중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 천재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처음에는 피아노에 서툰 아이들이었다.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다른 음악가와 다른 점은 하나뿐이었다. 초보 시기에 친절하고 끈기 있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만났을 뿐이다. 다정한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음악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프로가 되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을 버텨냈다. 결국에는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울 계획이라면 실력이 좋은 선생님을 찾을 필요 없다. 단시간에 빨리 실력을 키워줄 커리큘럼을 가진 코치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냥 가장 친절하고 진심으로 학생을 위해 줄 사람을 찾으면 된다. 어른에게는 더더욱 다정한 선생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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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스승을 만나 본다


어른은 자꾸 독학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면 그때 선생님을 찾아보겠다고 말한다.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쓰다 보니 생초보인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보일 정도로 실력이 쌓이는 시기는 오지 않는다. 실력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 실행 속에서 방법을 찾아야지 방법을 찾고 나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독학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유튜브’가 있기 때문이다. 초보들은 배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유튜브를 보면 무료로 쉽게 배울 수 있잖아요. 최고 고수들의 노하우가 유튜브에 다 남겨져 있어요."


나도 처음에는 유튜브를 통해 롱보드 타는 법을 배웠다. 유튜브에 등장하는 롱보드 선배들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곧 중급 수준은 될 줄 알았다. 그렇게 10개월 유튜브를 보며 독학을 하다가 첫 선생님을 만났다.


"죄송하지만 독학만 하셨나 보네요. 전혀 기초가 안 되어 있어요. 보드에 오르는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봐 드릴게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제대로 연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였을까. 몇 번 가르침을 받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독학을 한 사람은 티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교정해 줄 때와 같은 바른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유튜브는 내가 제대로 연습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지식이나 스킬을 제대로 익혔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피드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고쳐야 할 점, 나쁜 피드백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따끔한 피드백이 없으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유튜브의 단점은 또 있다. 유튜브에는 초보 대상 가이드는 넘치지만, 중급 이상에 대한 자료는 찾기 힘들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유튜버로서는 중급 대상의 콘텐츠는 시청 수가 나오질 않으니 영상을 만들 동기가 부족하다. 중급 영상은 수가 적지만, 고수의 영상은 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수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기 위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콘텐츠를 올린다. 사람들은 고수의 영상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과감하게 교육비에 투자해 보기를 추천한다. 처음부터 비싼 장비를 사기보다는 교육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하드웨어에는 돈을 잘 쓰면서도 소프트웨어에 쓰는 돈은 아까워한다. 처음부터 초보자에게는 과한 고급 장비를 구매한다. 당근마켓이 돈을 벌 수밖에 없다.


초기에 친절한 선생님을 만나 기초를 다졌다면 점차 여러 선생님을 만나보길 권한다. 어떤 분야건 스킬과 노하우의 축적이 필요한 분야에는 한가지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해당 스킬을 어떻게 기억해 두는지가 다르다. 또 그걸 설명하는 방법도 다르다. 우리는 각자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나만의 그림으로 그려 뇌에 저장한다. 비슷한 점프 기술을 하더라도 어떤 느낌으로 뛰는지가 각자 다르다.


롱보드 스킬 중에서 '피루엣'이라는 기술이 있다. 피루엣은 본래 발레 용어다. 달리는 보드 위에서 한 발을 축으로 360도 회전하는 기술이다. 피루엣 동작을 설명하면서 A 선생님은 '발표할 때, 저요! 저요! 하며 일어나는 느낌으로 앉았다 일어나는 힘으로 몸을 일으키며 돕니다.'라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B 선생님은 '상체를 꽈배기처럼 제자리에서 회전시키면 하체가 따라옵니다.'하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익히고 보니 모두 맞는 말이었다. 각각의 선생님이 설명한 세부 동작이 모두 합쳐져 피루엣이 완성되었다. 선생님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동작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측면을 전달한 것이다.


하나의 특정한 스킬은 부분으로 쪼개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적인 힌트를 가지고 연습을 반복해 하나의 전체적인 과정을 완성 시켜야 한다. 연습을 반복하면 뇌 안에서는 이 동작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고, 결국 단일 프로세스로 인식된다.


다양한 선생님과 동료를 만나면서 힌트를 주워 모은다. 이걸 반복 연습해서 나만의 실행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은 취미에서도, 일에서도 똑같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숙련을 반복해 나가면 어느 순간 고수의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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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노트 적기


<발레가 내 삶도 한 뼘 키워줄까요>의 작가 곽수혜는 발레를 배우면서 발레 일기를 적었다고 했다. 그녀는 발레 클래스에서 새로 배운 동작이나 지적받은 점 등을 노트에 적었다. 때로는 신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나 발레 연습을 통해 얻은 감정까지도 적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의 고민은 서로 맞닿는가 보다. 나도 롱보드를 배우면서는 성장 일기를 적었다.


내가 성장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기억의 한계 때문이었다. 지적받은 동작은 참 많은데 적어두질 않으면 태반을 잊어버렸다. 레슨을 받고 지적사항이 나오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열심히 기록해 두었다. 나중에라도 그 기록을 보면서 빠짐없이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어려운 스킬에 간신히 성공했을 때도 성장 일기를 적었다. 초보 단계에서는 성공률이 높지 않았다. 10번을 시도하면 간신히 1~2번 성공할 정도였으니 적어두어야만 성공했을 때 달랐던 점이 뭔지 알 수 있다.


매번 모임 때마다 1페이지의 서평을 가져가야 하는 독서토론 모임이 있었다. 고작 1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서평을 적는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모임 날짜가 가까워지면 서평 쓰기 때문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이 서평을 모아놓으니 꽤 두둑한 지적 자산이 쌓였다.


나중에 모아놓은 서평만 보아도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이 떠올랐다. 책을 덮은 후에는 금방 잊기 쉬운데 기록이 남아 있으면 기억이 오래간다. 1페이지의 짧은 기록이지만 이걸로 책의 교훈을 다시 곱씹을 수 있으니 참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글씨가 악필인데다가 노트와 필기구를 준비하는 과정도 꽤 귀찮다. 노트를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스럽다. 스마트폰에 메모 앱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앱을 켜고 키보드로 입력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버텨 보았지만, 기록의 장점이 너무 커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은 휘발성이 크다. 기록하면 그때부터 나의 개인 역사가 된다. 그 히스토리가 모여서 '지금의 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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