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아닌 취미에서 고수되기

집중의 시간, 나만의 기준과 속도

by 임희걸

고수로 성장하는 방법


신입사원 시절 W 과장님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당구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초절정 고수의 수준인 500점을 쳤기 때문에 하수인 나는 감히 상대할 수 없었다. 간혹 당구장에 따라가면 선배들이 당구 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선배들이 시켜주는 중국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 번은 W 과장님이 어떤 분야에서 고수가 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반인 중에는 500점을 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500이라면 이 바닥에서는 신선 수준이지. 내가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아니?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기 직전, 친구가 아버지 당구장을 잠시 맡은 적이 있었지. 그 친구 덕분에 6개월 동안 당구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종일 당구만 쳤지.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당구를 쳤으니, 하루에 13~14시간 정도 연습을 했을 거야.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프로 수준의 실력이 되어 있더라고."


어떤 기술이나 전문 지식을 쌓아야 할 때는 집중적인 연마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에게 글쓰기가 그랬다. 지금도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형편없었다. 독자에게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 편의 글을 끝마치는 게 더 어려웠다. 자꾸 추가해야 할 내용이 생각나고 더 넣고 싶은 글감이 많았다. 그렇게 자꾸 뭘 집어넣으니 글이 미완성으로 남았다.


3년간 책 쓰기에 도전했더니 글의 마무리가 쉬워졌다. 지금은 아무리 글감이 많아도 과감하게 버리고 주제에 맞는 글감만을 골라 넣는다. 책을 쓰려면 출판사에서 집중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고칠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받으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수정 원고를 다시 제출해야 한다. 이런 집중적인 퇴고의 시간을 6개월 정도 가졌더니 글을 미완성이 상태로 남기지 않게 되었다.


취미라고 너무 만만하게만 보다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취미나 숙련자가 있고 초보가 있다. 초보는 처음에는 새로운 활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한다. 시간이 흐르면 실력이 향상한 사람은 계속 즐길 수 있는데 반해, 실력이 제자리인 사람은 포기한다. 취미라고 늘 편안한 소프트 존에 머물러 느슨한 강도로 연마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고 적당히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인 소프트 존을 뛰쳐나와야 한다. 그리고 집중적인 성장의 시기를 거쳐야 수준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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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기준과 속도


일평생 누군가와 비교하며 사느라 참 힘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부모를 잘 만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신입사원인데 부모가 사준 외제 차를 끌고 나타나는 이들이 있었다. 뭐 그 정도야 내가 꾹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부모를 잘 만나 발생한 인생의 간격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가계부를 써가며 아껴 쓰고 물건을 살 때마다 한 번 더 고민했다. 그렇게 지출을 줄이고 또 줄였지만 도통 자산은 늘지 않았다. 반면 그들은 부모가 보태준 돈으로 일찌감치 부동산에 투자하여 빠르게 재산을 늘려갔다.


아이를 낳으니 이 아이의 사회적 출발점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에 더욱 우울해졌다. 부모의 돈으로 아이들까지 좋은 차를 태워주고 좋은 옷을 사준다. 대를 이은 인생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기만 한다. 반복해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인스타에서 나와 비슷한 시기에 롱보드를 시작한 분의 기록을 만났다. 똑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의 실력은 나보다 한참 앞서 있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실력이 늘었는데, 도대체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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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으로 롱보드라는 취미를 포기할까 생각했다. 비교는 최악의 악마다. 어린 시절 읽었던 탈무드에서 <수도승의 기도>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수도승이 깊은 신앙을 위해 산속에 틀어박혀 기도를 시작했다. 악마는 그런 수도승의 의지를 꺾고 싶었다. 금은보화를 제안하고 미녀로 수도승을 유혹해도 신앙심이 깊은 수도승은 흔들리지 않았다. 악마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유혹을 했다.


"자네 동기 수도사가 추기경이 된다는데?"


수도승은 그 동기보다는 자신의 신앙심이 더 깊고 신학 지식이 뛰어나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기도를 포기하고 사실을 확인하러 산에서 내려갔다. 악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질투는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력하게 사람을 뒤흔든다.


나는 왜 롱보드를 타는 걸까 고민했다. 처음 보드에 오른 순간 바로 반해버렸다. 보드에 대한 사랑이 약간 사그라든 후에는 나이가 들어도 육체 스킬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계속해서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좋았다. 어쨌든 누군가를 이기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면 그만이었다.


시장경제 속에서 살아가면 끊임없이 비교를 반복하게 된다. 거기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취미를 즐기지만, 어느새 여기서도 비교를 하고 있었다. 다시 비교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교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은 비교가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교를 계속하는 한 언제까지고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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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끝이 없다. 그래서 즐겁다


배우는 게 재미있으려면 '간당간당한 경계선'을 잘 이용해야 한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배웠다. 교육학에서 가장 재미있는 개념 중 하나가 <근접 발달 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다. 이것은 현재 가능한 스킬보다 약간만 더 어려운 영역을 가리킨다.


이 영역에 도전할 때 가장 즐겁다. 너무 쉬우면 도전하고 달성하는 재미가 없어진다. 배울 것도 적다. 반대로 너무 어려우면 달성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이런 단계가 촘촘히 구성되어 있어 계속 조금씩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배움의 즐거움이 최고가 된다. 취미와 관련된 스킬에는 이렇게 단계가 구성된 상황이 자주 있다.


게다가 아무리 배워도 고수의 영역에는 끝이 없다. 악기를 배울 때 과연 정점이라는 게 있을까? 일반인은 몇 년을 연습해도 프로의 근처도 가기 어렵다. 설사 프로라 해도, 최정상의 수준에 올랐다 해도, 기교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끝이 없으니 재미있다. 1~2년 어떤 스킬을 연습하고 한계에 다다른다면 쉽게 싫증이 난다. 테니스를 취미로 가진 선배는 늘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더 센 강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래서 테니스가 재미있다고 했다.


내 능력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끝없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는 운동이나 취미를 가졌다는 건, 끝없는 즐거움을 가진 셈이다. 60세, 7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계속해서 실력이 나아지는 취미들이 많다. 골프, 테니스, 악기 연주, 글쓰기가 그렇다.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는 취미를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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