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관계 만들기

관계 때문에 이어진 읽기와 쓰기의 길

by 임희걸

독서토론부터 책 쓰기까지, 이 여정은 만남의 기회이기도 했다. 사람을 통해 새로운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을 가면 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 10여 년간 독서 모임을 통해 상당한 양의 책을 읽었지만, 책보다는 사람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맨 처음에는 <한겨례 문화센터> 논리적 글쓰기 강좌에 등록했다. 강사님은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수강생 중 한 분이 글쓰기 강좌에 오기 전에 <숭례문학당>이라는 곳에서 독서토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숭례문학당이라는 모임의 이름이 뇌리에 콱 박혔다.


글쓰기 과정을 끝마치고도 ‘숭례문학당’은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소정의 수강료를 받고 독서토론 모임을 운영해주는 곳이었다. 바로 독서토론 모임 하나를 등록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독서 모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숭례문학당에서는 종종 출간한 작가와의 만남의 자리를 열어주었다. 나는 작가와의 만남 자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신청했다. 그렇게 강연을 들은 작가 중에 <매일 아침 써봤니?>라는 책을 집필한 김민식 작가가 있었다. 방송사 PD로 일하면서 동시에 책 쓰기를 하고 있던 그는 ‘책이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무턱대고 그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 동안 혼자 원고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책 한 권을 출간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먼저 경험해 봤던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그럼 그게 어려운 일이건, 쉬운 일이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남이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는 용기를 전해주는가 보다.


만남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도 못했을 것이고, 다 읽은 책을 가지고 팟캐스트를 녹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책을 출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모두가 만남이 만들어 준 결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숭례문학당 독서토론 모임에서 만난 분들은 유독 방송통신대에서 공부를 계속한 분들이 많았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을 유지하다 보니, 좀 더 깊은 배움을 위해 대학에 가게 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분들이니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순수하게 배움의 즐거움을 쫓아 새로운 전공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분들의 추천으로 나 역시 방송통신대 대학원에서 평생교육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는 언제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좋은 취미도 사람을 통해 알게 된다. 훌륭한 책도 누군가의 추천을 통해 읽게 된다. 멋진 동료를 만나 그 분야에 더욱 매진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만남에 성공하면 결국 멋진 길을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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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만난 사람은 훌륭한 롤모델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활동을 통해 만난 분들은 이해관계에서 빗겨나 있다. 그들은 모두 내게 훌륭한 롤모델이 된다. 물론 직장에도 좋은 선,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은 나와 비슷한 한계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똑같은 상사 밑에서 비슷한 인간관계와 비슷한 업무로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색다른 롤모델을 발견하기 어렵다.


취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나와 상황이 다른 분들이다. 이 다름이 꽤 많은 교훈을 준다. 직업이 다르다 보니 생각의 틀이 다르다. 나이나 생활 환경도 모두 제각각이다. 평소 직장에서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게 된다.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문학 독서토론 모임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수강료가 없이 회원들끼리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모임이었다. 전문적인 진행자가 없는 독서토론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거기서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형님을 만났다. 그는 문학을 비평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학을 분석하는 수준이 평론가 못지않았고 배경지식도 남달랐다. 그가 이야기할 때면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 형님 덕분에 토론의 깊이와 넓이가 사뭇 달라졌다.


토론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우연히 그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넌지시 신상 정보를 물었다. 틀림없이 문학과 관계된 일을 하리라고 짐작했다.


"형님은 문학 전공이신 것 같습니다. 어떤 문학을 공부하셨나요?"


"저는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수산물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일을 합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그렇게 날카로운 분석을 하세요?"


"하하하, 워낙 문학을 좋아하니까 많이 보고 깊이 생각할 뿐입니다. 문학은 다양한 사람들의 내면을 엿보게 해줍니다. 재미도 있고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거래를 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문학을 통해 배운 인간의 특성이 도움이 됩니다."


나는 그때까지 문학을 통해 배운 인간 군상의 모습을 거래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문학은 인간과 삶에 대한 작은 힌트를 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님의 말은 문학 전체를 바라보는 내 생각을 변화시켰다.


폭넓게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영향으로 내 생각의 외연이 확장된다. 이게 취미 자체를 통해 얻게 되는 재미 외에 부수적인 이득이다. 취미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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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고독 속에서 나를 알아가야 한다


나는 휴일 아침에 공원에 롱보드 타러 가기를 즐긴다. 보드를 통제할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충돌 사고가 적잖이 두렵다. 낮의 공원은 초등학생을 위한 공간이 되고, 저녁 무렵이 되면 20대 보더들의 공간이 된다. 사람 북적이는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초보 아저씨에게는 이른 아침이 편안하다.


휴일 아침에 공원에 나가면 독특한 취미를 가진 아저씨들이 모인다. 외발자전거, S 보드, 양발이 떨어진 형태의 스케이트보드 등 온갖 바퀴 달린 기구들이 등장한다. 아저씨들끼리는 간단한 목인사만 할 뿐,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다들 왜 이 시간을 선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처럼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시간을 피해 나왔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취미를 통한 만남을 선호한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다른 분들을 만나면 깨닫는 것이 많다. 내가 미처 겪어보지 못한 삶의 다른 면들을 듣는다. 혼자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단면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타인을 만나 다른 삶을 나누는 것이 의미 있다.


때로는 고독의 시간 속에서 취미를 즐기는 것도 즐겁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에 대해 의외의 면을 발견한다. 롱보드를 탈 때의 나는 소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빨리 성장하고 싶어서 조급해한다. 과감하게 시도한 기술이 실패했을 때는 땅을 치며 안타까워한다. 어제까지 잘 안되던 기술에 성공했을 때는 세상을 얻는 것처럼 기뻐한다. 고작 널빤지 위에서 이리저리 발을 놀리는 것뿐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천상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취미가 아니었으면 언제 이런 내 모습을 만났을까 싶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이렇게 순수해지지 못한다. 어른에게는 각자의 역할에 따른 가면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가면을 '페르소나'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회사에 나오면 그때부터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연기해야 한다. 업무에서 문제가 생기면 별것 아니라는 듯 잘난 체를 하지만, 실제로는 그걸 해결하느라 며칠을 끙끙댄다.


조직에서의 나, 가정에서 가장으로서의 나, 남편으로서의 나…. 모두 나의 단면들이지만 가면을 써야 한다. 가면을 썼을 때는 내 진심에서 우러나서 행동하지 못한다. 그 역할에서는 그래야만 하므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혼자 취미를 즐길 때만은 겉껍질이 벗겨진 내가 등장한다. 알맹이를 완전히 드러낸 그 모습만으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간혹 내 안에 숨겨진 나를 탈출시켜주고 싶다.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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