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삶, 취미로 해소한다

일도 재테크도 뜻대로 되지 않지만

by 임희걸

일에서 슬럼프에 빠졌다고 바로 취미에 진심이 된 것은 아니다. 일이 재미가 없어지니 일 자체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당연히 밥벌이 의무에서 벗어나야 했다.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되어 이 상황에서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주식 투자를 했다. 첫 직장도 증권회사였다. 어느 정도 주식 투자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다. 급여를 조금씩 모아 종잣돈이 생기면 그때그때 투자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투자를 계속한 결과는 간신히 원금을 건지는 정도의 수익이었다. 그것도 정말 운이 좋아서 간신히 원금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하락 장에서 종잣돈의 70%를 날렸을 것이다.


주식 투자 공부를 위해 5개의 자격증을 땄고, 70권 정도의 책을 보았다. 투자 설명회와 강연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주식 투자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소질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수익이 좀 날만 하면 증시 전체가 뒤집히는 일들이 벌어졌다. 2003년 카드사 사태, 2008년 서브 프라임 위기,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2016년 중국 증시 폭락, 2018년 미·중 무역전쟁,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런 이벤트마다 내 계좌는 사정없이 녹아내렸다.


회사 생활이나 재테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똑같았다. 어떤 일이건 통제력이 있고 결과가 예측 가능해야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데, 회사 일도 재테크도 내가 통제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다. 그냥 열심히 노력했으니 거기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뿐인데 세상에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취미가 좋다. 일단 취미에서는 결과를 욕심내지 않는다. 남들이 모두 감탄할 만큼 글을 잘 쓰고 싶다. 유튜브의 롱보드 여신만큼 멋지게 보드를 타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취미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어차피 재미를 위해서 시작한 활동이니까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또 시간제한이 없다. 그게 제일 마음 편하다. 당장 유튜브의 롱보드 고수의 동작을 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60세까지 보드를 탄다면 그때는 최고의 고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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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하는 취미


브런치에 발레를 취미로 하는 분들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발레야말로 장비가 전혀 필요 없는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옷값이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음악이든 스포츠든 전문 분야의 의상은 가격이 매우 비싸다. 게다가 발레복과 관련된 욕심은 끝이 없단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큰돈이 드는 취미가 많다.


초보 단계일 때는 실력보다 차림새나 장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단 장비가 좋으면 실력도 좋아 보이게 마련이다. 후광 효과(Hallo Effect)란 겉모습이 사람의 능력을 더 좋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 심리적 효과가 통용된다.


물론 장비 구매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장비라면 되도록 좋은 것을 살 필요가 있다. 장비가 전부는 아니지만, 실력이 늘어날수록 좋은 장비가 실력을 뒷받침해 준다.


한 중견 기업의 대표님은 등산을 좋아해 틈이 날 때면 산을 오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이기 때문에 고급 등산 장비를 마음껏 살 수 있지만 ‘히말라야에 갈만한 장비로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게’ 싫어서 등산용품은 저렴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 그지만 등산 스틱은 꽤 고가의 것을 골랐다. 50% 할인해서 70만 원짜리였다. 아무래도 강성이 중요한 장비다 보니 좋은 소재를 가진 것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국내의 산을 모두 정복한 그는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중간에 발을 헛디뎌 수백 미터를 미끄러졌다. 그때 고가의 등산 스틱이 그를 살렸다고 한다. 꼭 필요한 장비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되, 과시성 소비는 되도록 자제한다. 그게 고수의 자세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가 가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수준이 높아질수록 장비나 복장보다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 동호인들도 실력과 함께 보는 눈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초보 시절에는 서로 비싼 장비로 으스대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들끼리는 장비를 비교하지 않는다.


국내 최대의 롱보드 카페인 <롱보드 코리아>에는 종종 어떤 보드를 사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올라온다. 고수들이 아무리 답변해 주어도 가격, 브랜드, 디자인 등에 어떤 것이 좋냐는 초보들의 질문은 사라질 줄 모른다.


결국 그 대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장비는 자신의 몸에 익히기 나름입니다. 좋고 나쁨은 없으니 그냥 자기 눈에 보기에 제일 예뻐 보이는 걸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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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해결해준다


취미에서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활동을 꾸준하게 계속하는 데 있다. 며칠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꾸준히 할수록 고수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더 빨리 능숙해지기 위해서 안달한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들은 대부분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인내하지 못한다. 다이어트에는 몇 개월간 꾸준한 식단 조절과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1~2주 만에 날씬해진 몸을 보기 원한다. 글쓰기 실력이 늘어나려면 지속해서 글을 써봐야 한다. 다들 글쓰기 책 한 권을 보고 실력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인내의 열매가 달지만, 그 열매를 맛보기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돈의 심리학>에서 모건 하우절은 부자 되기 힘든 이유가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인내심이 부족하다. 당장 큰 부를 누리고 싶어 안달한다. 오랫동안 주식 투자를 했지만, 투자 기간을 10년, 20년으로 잡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이 1~2년 안에 큰돈을 만지지 못하면 실망을 했고 투자를 접었다.


하우절에 따르면 좋은 투자란 적절한 수익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올리는 것이다. 파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면 이걸 언제까지고 반복한다. 그러면 부가 조금씩 쌓이다가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자본금이 큰 사람이 사람, 기술이 좋은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제일 큰 부자가 된다. 워런 버핏이 가지고 있는 자산 중 90%는 그가 65세가 넘어서 만들어졌다.


취미는 오랫동안 한 분야를 지속하는 연습을 시켜준다. 하지만 골프, 테니스, 복싱 등 취미를 즐기는 이들 중에서 20~30년간 같은 취미로 실력을 갈고닦는 사람이 많다. 오랫동안 취미를 즐기며 실력을 닦은 사람은 일이나 투자도 느긋하게 한다. 하우절이 말하는 시간에 투자하는 원칙을 깨달은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조정래와 무라카미 하루키다. 작품도 뛰어나지만 두 사람의 꾸준함에도 배울 점이 많다. 뛰어난 작가는 모두 꾸준함과 철저한 자기관리 원칙을 지켰다.


얼핏 소설가는 술을 좋아할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조정래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30년간 술을 끊었다. 술을 마시면 그날을 물론 다음날까지 숙취에 시달리게 되므로 2~3일간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렵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것이다. 원래는 술고래였다고 한다.


두 작가 모두 매일 일정한 분량의 원고를 쓴다.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정해진 분량을 써나가는데, 잘 써지는 날도 써지지 않는 날도 쓰기로 한 분량만큼은 반드시 채운다. 잘 써진다고 많이 쓰면 안 써지는 날은 적게 쓰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자신과 약속한 분량은 꼭 지킨다. 이걸 수십 년 반복한 결과 거장이 만들어졌다.


취미에 언제까지라는 끝은 없다. 많은 경우는 점점 소홀해지다가 손을 멈추는 그 날이 끝나는 날이다. 달리 말하면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고수가 된다.


일에서 최고의 전문가, 그 분야의 고수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은 그렇게 되어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된다. 그래도 취미에서는 고수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을까 희망을 품는다. 언제까지고 그만두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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