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롱보드를 타다
롱보드를 타러 공원에 가면 초등학생 아이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들끼리만 보낼 수 없다 보니 멀찌감치 벤치에는 엄마, 아빠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엄마 아빠는 스마트폰 보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롱보드를 탈 때면 '본래 내 자리는 저기 벤치 위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든다.
자신을 남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롱보를 탈 때면 슬슬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남들의 시선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취미에도 사회적인 규범이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은 아내가 유튜브에서 비보잉을 연습하는 중년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분을 보니, 오빠 생각이 나네."
영상 속 중년의 비보이는 꽤 안쓰러웠다. 그 열정은 높이 사지만 무릎 나온 트레이닝 복 차림이 초라했다. 연습하는 단계니 당연한데도 제대로 실력을 갖추지 못한 모습도 우스꽝스러웠다. 매사에 어설픈 동작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었다. 나는 그의 영상을 웃으면서 볼 수 없었다.
나이에 적합한 행동거지가 있다. 나이 든 이는 어떤 일이든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어야 한다. 중년이 초보인 모습은 꼴사납다. 결국은 나도 그런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이 들었다고 못 할 취미가 어딨느냐고 외치면서도 내심 거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롱보드 타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걸 타는 내내 '나이에 걸맞은 품격'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을 겪을 것이다.
취미는 한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에 따른 계층 규범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취미가 존재한다. 서핑, 스케이트보드, 클라이밍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가 대표적이다. 댄스, 비보잉처럼 나이에 따른 품위를 훼손한다는 취미도 꺼린다.
나이가 들수록 어른의 취미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등산, 자전거, 마라톤. 이 정도가 시니어에게 걸맞은 취미다. 위험하지도 않고 품위를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스킬을 배우기보다는 정신력 단련을 위한 취미라는 점도 비슷하다.
서핑을 즐기는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50대 서핑 애호가들도 눈치 볼 필요 없다'라고 했다. 이 말은 결국 서핑하는 중년은 누구나 어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에 맞는 행동과 취향이 정해져 있다는 건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만의 특징인 걸까?
한 편으로는 중년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에 대한 어떤 동경이 동시에 존재한다. 롱보드 강사님에 따르면 강습을 신청하는 사람 중에서 40대 이상이 20~30% 정도라고 한다. 생각보다 꽤 많은 숫자다. 이분들은 다 어디에서 롱보드 연습을 하고 있을까?
어른들은 MZ 세대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MZ 세대처럼 되고 싶어 한다. 기성세대는 MZ 가 입는 것, 먹는 것, 쓰는 것을 따라서 소비한다.
취미에 대한 성별을 명확히 구분하는 문화도 존재한다. 블로그에서 취미 관련 글을 보면 부쩍 늘어난 취미 중 하나가 <발레>다. 성인 발레를 한다는 한 남성의 글을 보았다. 역시나 MZ 세대답게 당당하게 발레 강습의 과정을 써 내려갔다. 글 곳곳에서 남성에게 발레를 가르쳐줄 학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초보 발레리노는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성 발레라고 하면 아직도 타이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사회 계층에 따라 심리적인 벽이 존재하는 취미도 있다. 골프와 테니스는 대표적인 귀족 스포츠로 꼽힌다. 일단 아무 곳에서나 즐길 수가 없다. 복장, 장비, 장소 등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대부분의 제약은 비용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다.
테니스에 진심인 선배에게 왜 테니스가 그렇게 귀족 스포츠에 속하냐고 물었다. 라켓 하나 외에는 다른 장비가 필요치 않고 골프처럼 교외로 멀리 나가는 비용도 필요 없다. 선배의 대답은 장소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에는 테니스장이 흔치 않다. 과거에는 대단지 아파트 일부가 복지 시설로 테니스장을 만들었다. 그 외에는 유료 코트들이 존재한다. 대단지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사람, 매번 유료 코트 대여비를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누가 어떤 취미를 즐기느냐도 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엄연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지금 새로 취미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선입견과 심리적 장벽에 얽매이지 않고 진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으라 권하고 싶다. 취미는 다양한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는 도피처가 아닌가. 그런데 '이 나이에는, 나 정도의 소득에는, 이곳에 살면 이 정도는….' 하며 또다시 진심이 아닌 걸 선택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에이징 파워 Aging Power – 나이가 들어 좋은 점
내가 롱보드라는 취미를 선택한 건 꽤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뇌 가소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1년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은 분야가 심리학이었다. 최근에는 신경과학이 많이 발달하면서 뇌의 구조와 작용에 따라 심리학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신경과학은 우리의 뇌가 계속해서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훈련하면 새로운 뇌 신경이 만들어진다. 이로써 나이 들수록 지능은 쇠퇴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깨지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에게 노화는 정신과 육체의 퇴화를 뜻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일단 경험에서 오는 직관적인 결론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노인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진다. 다행히 오랫동안 자신의 전문 분야를 추구한 학자나 장인을 통해 지적인 능력은 계속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신체 능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운동능력 중 고급 기능에 해당하는 것은 뇌의 신경망 연결이 필요하다. 운동은 몸을 쓰지만, 뇌의 명령 체계와 관련이 깊다.
나이가 들어도 운동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다. 책에서 여러 학자가 주장한 바를 내가 먼저 직접 실천해 보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도 육체 활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활동이 필요했다. 스케이트보드나 롱보드 정도의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운동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종 초등학생 사이에 끼여 롱보드를 타다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난 지금 뇌의 운동능력 발달을 테스트한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중이다.'
물론 어린아이들처럼 배울 수는 없다. 한 강사님은 롱보드를 탈 때의 주의점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절대 초등학생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20대인 저도 초등학생의 습득 능력은 못 따라갑니다. 초등학생이 새로운 스킬을 쉽게 익히는 걸 보고 따라 하다가 관절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요."
어른은 어른에게 맞게 성장하는 방식이 있다. 아이들의 배움은 하얀 백지에 새로 기록을 하는 과정이다. 지울 필요도 없고 방해되는 사전 지식도 없다. 있는 그대로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무엇보다도 실패 경험이 적으니 일단 해보고, 그다음에 생각한다.
어른은 뇌 안에는 기존의 지식, 경험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냥 무작정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존의 경험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패 경험이 있으니 두려움도 크다. 조금씩 자신을 설득하여 그 두려움을 줄여가야 한다. 타인에게 배우기를 꺼리는 고집도 있다. 선생님에게 배우되 내 스타일로 소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어른의 배움은 더디다. 육체 활동은 더욱더 그렇다. 따라서 조급해하지 말고, 빠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내 페이스를 만들고 차분히 내 속도에만 따라가야 한다.
그래도 어른이 되어서 확실히 좋은 점이 있다. 바로 에이징 파워(Aging Power)다. 의사이자 작가인 이시형 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에이징 파워가 강해진다고 말한다. 많은 경험을 통해 원숙미를 발휘할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어느 정도 통찰력이 있다. 그동안의 성공 경험이 뒷받침되어 나만의 성공 공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어른의 힘이다.
어른의 배움은 아이의 배움과 달라야 한다. 다르다는 것이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다. 어른에게는 어른만의 방식이 있다. 에이징 파워를 잘 이용하면 어른도 무엇이든 배우고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