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정면으로 맞서는 취미는 어떨까
회사에서 선, 후배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일하지 않을 때는 뭘 하세요?’라고 묻곤 한다. ‘취미가 뭐예요?’ 이렇게 묻지 않는다. 취미를 물으면 대부분 부담스러워한다. 취미라고 하면 왠지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대답을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골프나 사이클처럼 고급 스포츠를 이야기해야 듣는 사람이 우러러보리라 생각한다. 거창한 취미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취미란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은 분도 있다. 자주 반복하는 활동이 아니라면 취미라고 대답하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떠올린 질문이 ‘일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하는가?’이다. 이 질문에는 다들 편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는 사람부터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한다거나 등산을 한다는 대답까지 다양한 답이 나온다.
점점 사람들의 대답에서 키워드의 범위가 넓어짐을 느낀다. 10년 전만 해도 대답이 뻔했다. 등산, 조깅, 쇼핑…. 접근성이 쉬운 취미가 주로 등장했다. 이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도 나온다. 유화 그리기, 블로그에 글쓰기, 아마추어 장편 문학 쓰기, 웹 소설까지. 이전에 비해 다양한 분야의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숨고, 프립 등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많아졌다.
이 대답을 유형별로 묶어 보면 몇 가지로 나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TV 시청이나 영화 감상처럼 특별한 노력이 없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지만, 스포츠나 요리처럼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세계적인 여가 학자인 캐나다 로버트 스테빈스 교수는 여가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여가에는 진지한 여가, 프로젝트형 여가, 일상적 여가가 있다. 진지한 여가는 특수한 지식, 기술을 필요로 한다. 상당한 전문성이 있어야 즐길 수 있으므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신 커다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스쿠버 다이버, 천문 관측, 악기 연주, 글쓰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로젝트형 여가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준비하여 실행하는 여가를 말한다. 세계 일주를 위해 준비한다던가, 특별한 기념일까지 가방이나 가구를 만드는 행위다. 일상적 여가는 특별한 지식이나 스킬이 없어도 바로 즐길 수 있다. TV 보기, 잠자기, 맛집 찾아가기 등이다.
취미도 크게 진지한 취미와 일상적 취미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 즐길 수 있으면 일상적 취미에 해당한다. 운동이나 만들기, 키우기 등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진지한 취미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일상적 취미를 탐닉한다. 우리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압축적인 성장을 통해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압축적이라는 말은 여타 다른 나라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성장한 단계를 단시간에 급격히 뛰어넘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성취에 더욱 집중해 왔다. 그에 따라 부작용이 생겼다. 일이 강조되니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일을 위해 쉬는 시간’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졌다. 취미는 단순히 일을 위한 기력 보충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2021년 문체부의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취미, 여가활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소극적 활동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TV시청 1위, 미디어를 통한 스포츠 경기 관람 2위, 친구 만남이 3위, 영화관람이 4위, 쇼핑/외식 5위 등이다. 진지한 활동은 걷기(6위), 자연 명승 및 풍경 관람(9위)으로 10위 안에 2가지뿐이다. 어느 나라나 산업화 초기에는 단순 취미 활동이 주를 이룬다.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사회가 성숙할수록 스포츠 참여가 늘어나는 등 취미와 여가가 확대되고 심화한다.
안타깝게도 일에 지쳐있는 한국의 직장인들은 현실을 잊기 위한 일상적인 취미를 찾는. 퇴근 후에 넷플릭스를 틀면 잠시 업무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 년간 혼술에 푹 빠져 산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금요일 저녁의 여유가 좋았다. 약속이 없으면 혼자라도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슬 보았다. 웬만한 맥주 맛을 다 보고 나니, 맥주로는 더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케, 와인, 칵테일까지 즐기는 술의 종류가 늘어났다. 술의 종류만큼이나 술을 마시는 요일도 늘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에는 주말이 너무 멀었다는 절망감에 혼술을 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는 곧 주말이니 부담이 없다는 생각으로 술을 마셨다. 토, 일요일에는 다음날 늦게까지 자도 된다는 생각으로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시는지 궁금한 생각에 캘린더에 마신 날을 적어보았다. 보름 연속 음주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이런 사실에 충격을 받고 술 마시는 횟수를 줄였다. 되돌아보면 이 시간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는 점을 느낀다. 건강도 나빠졌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애주가인 한 친구는 술을 마시는 그 순간에는 행복함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취기에 기분 좋은 시간은 아주 짧았고 숙취는 아주 길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취미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몰입의 쾌감이 없었다. 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취미는 건강에 좋다는 유익 외에도 그걸 할 때 느껴지는 과정의 즐거움이 있다.
롱보드를 탈 때면 더 높은 스킬의 단계에 이르기 위해 몰입하는 순간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 어느 휴일에는 롱보드 연습을 하다가 4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 내게 4시간 동안 운동을 계속하라고 했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새로운 스킬이 성공할 듯, 말 듯 나를 간지럽혔기 때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하게 되었다. 도전 또 도전하는 그 순간이 행복했다.
독서 또한 읽는 과정의 즐거움이 있다.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이 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지점이다. 매 장을 읽을 때마다 연신 '맞아 맞아'를 외치게 된다. 눈빛만 봐도 말이 통하는 20년 지기 친구와 밤새워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현실에서는 맞이하기 힘든 경험이지만, 독서를 할 때면 종종 이런 경험을 한다. 이게 독서의 쾌감이다.
암울한 현실에 대한 보상으로 취미를 추구하면 빨리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된다. 넋을 잃고 밤새 자극적인 영상에 빠져들거나 단맛, 짠맛을 탐닉한다. 한참을 빠져있다 현실로 돌아오면 보람보다 후회가 크다. 더 적극적인 취미 활동을 영위하면 몰입을 통해 고민을 잊을 수 있다. 도망칠 것이냐, 적극적으로 맞설 것이냐의 문제다.
스킨 스쿠버를 취미로 하는 형님은 자꾸 다이빙을 한 번만 해보라고 권한다. 자주 즐기기에는 접근성이 나쁜 취미여서 거절을 했다. 몇 번 거절했더니 나중에는 일부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다른 사람에게 다이빙을 권하는 이유가 뭐예요?"
내 질문에 그는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다이빙의 아름다움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경험해 봤으면 하기 때문이지. 물밑에서는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나게 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바다 밑에 들어가면 대자연을 느끼고 또 그 안에 머물러 있는 내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지."
고요한 바닷속에서 마주하는 나 자신, 그걸 경험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고 한다. 그 느낌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단다.
나쁜 취미는 없다. 다만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취미이냐만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