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위한 에너지가 생긴다

취미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

by 임희걸

출근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어른의 놀이


내 피아노 레슨 시간은 토요일 오전이었다. 평일 저녁 레슨을 받아본 적도 있었다. 당시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기 전으로 시도 때도 없이 야근해야 했다. 갑자기 회식 자리에 끌려가기도 했다. 일주일에 몇 시간 안 되는 소중한 수업 시간을 방해받기 싫었다. 그래서 토요일 클래스로 시간을 변경했다.


매주 토요일에 학원을 간다는 것도 여자 친구나 가족의 배려가 필요하다. 약속이나 모임이 많은 토요일에 주변 사람들에게 배려를 요청하면서까지 클래스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까지 취미 생활에 애쓴 이유는 주말 피아노 레슨이 있어야 평일에 일하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이 에너지를 쓰는 시간이라면 취미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당시에 내게는 일하는 이유가 퇴근 후에 피아노 연습 1시간을 위해서였다. 퇴근 후에 피아노 연습을 할 생각을 하면 에너지가 샘솟았다.


한창 피아노라는 취미에 도취 되었을 때는 나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지만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가면을 써보기도 했다. 물론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실력은 기초적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마음먹든 내 자유 아닌가?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데는 돈도 들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껏 부업으로 회사에 다니는 피아니스트 역할을 상상했다. 그러면 월급쟁이의 쳇바퀴 인생이라는 자조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용어는 퇴근 후에 본업 외 나만의 프로젝트는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취미나 부업을 일컫는 때가 많지만 본업과 관련된 것 중 시험 삼아 해보는 일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이드 프로젝트 중 하나가 블로그 쓰기다.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도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누군가 블로그를 읽고 ‘좋아요’를 눌러주면 에너지가 생긴다. 어떤 블로거는 블로깅한 글이 늘어날수록 지적 자산이 늘었다고 여기며 뿌듯해한다.


사람마다 취미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 주는지 다르다. 운동으로 신체적 활력을 얻는 사람이 있다. 독서나 글쓰기를 통해 지식의 축적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공예품, 가구 만들기는 자신의 결과물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일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아마도 사장님들은 일을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면 에너지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주장하고 싶으실 것이다. 이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아주, 정말 아주아주 어렵다.


조직은 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나는 된장찌개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과장님이 재료를 보태고, 팀장님이 양념을 보태고, 상무님이 조미료를 때려 넣으면 ‘된장 꽁치 마라 볶음 탕’ 같은 이상한 음식이 탄생한다. 이런 음식을 만들어 놓고도 요리사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lucas-clara-hvPB-UCAmmU-unsplash.jpg



쉰다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은 아니다


등산이나 마라톤, 테니스같이 과격한 운동을 하면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동물을 키우거나 목공을 하는데도 상당한 주의와 육체적 활동이 필요하다. 취미도 에너지를 쓰는 과정이지 어떻게 충전이 되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있다.


우선 신체 활동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건강은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성공을 위한 에너지와 활력을 위해서 운동이 꼭 필요하다. 운동을 하면 사람은 더 활기차지고, 창의적으로 된다. 운동으로 몸과 마음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나는 달리기를 할 때 글감이 떠오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에 노트북을 준비하지 않고 조깅화를 준비한다. 달리다 보면 점점 기분이 고조된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다음은 마음의 차례다. 고민으로 꽉 차 있던 머릿속이 맑게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 상태로 한참을 더 달리면 글에 담을 아이디어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자신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 또 달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았다. 그는 미국에 교환 교수를 갔을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캠퍼스 인근 강변을 달렸다.


작가 하루키에게 글은 일에 해당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지식근로자에게 일이란 정신의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에 대한 대가가 필요하다. 하루키에게는 달리기가 달콤한 동기부여 요인이 된다. 달리고 나면 고통스러운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다.


그냥 쉬는 편이 진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내 마음이 활력으로 가득 찬다면 어떤 활동이냐는 중요치 않다. 다만, 푹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여유 시간 대부분을 스마트폰 보기나 유튜브 시청으로 채워 넣는 사람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유튜브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크게 재미도 느끼지 못하지만, 딱히 할 게 없다는 사람, 불안을 잊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는 사람은 아무리 쉬어도 충전이 될 수 없다. 단순히 현실에서 도망쳐서는 진정한 휴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취미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내면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할퀴어도 거기 버텨낼 힘을 키우는 일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강하지만 않다. 세상의 힘 앞에서 무너지고, 상처받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내면의 힘이 있으면 치명상은 피해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고작 세상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그 정도뿐이다.


kike-vega-F2qh3yjz6Jk-unsplash.jpg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들


한 후배는 등산을 취미로 삼는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동호인들과 야간 산행을 즐긴다. 저녁 8시~9시에 등산을 하러 모이는 직장인이 꽤 많다.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나서 저녁 시간에 힘든 운동을 하면 에너지가 고갈되지는 않을까?


후배는 산을 오르는 시간이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회사 일은 육체적인 에너지 소진이 아닌 정신 에너지의 소진이다. 정신 에너지가 바닥을 드러내면 신체 에너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몸을 크게 움직이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신체 활동을 할 만한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다. 여행하는 시간뿐 아니라,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도 들뜨고 즐거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취미를 떠올리면 일하는 시간도 즐거울 수 있다고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독서토론 모임이 있는 주는 확실히 일이 덜 힘들고, 심리적 에너지가 쉽게 차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 정해주는 책은 내게 맞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 책을 읽으려면 내가 선택한 독서에 비해 몇 배 힘들다. 하지만 그런데도 책을 읽고 거기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활동 자체가 좋다.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 이야기가 잘 통한다. 회사에서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여가나 취미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여유 시간을 재미로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삶을 계속하도록 만들어 주는 새로운 정신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육체를 쉬게 하는 것과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은 다르다. 몸이 쉴 때도 머리는 끊임없이 일한다. 휴일에도 걱정이나 근심이 우리 뇌 한쪽에 둥지를 틀고 쉬지 않고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쉬는 날에도 돈 걱정, 재테크 수익 걱정, 자녀 공부 걱정, 노후 걱정을 한다.


당장 걱정을 빨리 잠재우는 방법은 스마트폰이나 유튜브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소위 <넋>을 나가게 만든다. 아주 잠깐 걱정을 멈출 수는 있으나 멘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이런 방식으로 쉬면, 쉬어도 쉬어도 더 피곤할 뿐이다.


jared-rice-NTyBbu66_SI-unsplash.jpg



몰입을 통한 에너지 충전


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몰입을 즐겨야 한다. 취미에 강하게 몰입할수록 출근에 도움이 되는 에너지가 더 많이 생겨난다. 몰입은 어떻게 우리의 정신 에너지를 충전하고 우리가 진짜 휴식이 가능하게 해주는가?


심장은 일평생 쉴 수 없다. 심장이 쉬면 인간은 살 수 없다. 쉴 수 없는 것은 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뇌는 잘 때도 활동을 멈추지 못한다. 가뜩이나 뇌가 쉬기 어려운데, 현대인의 생활은 뇌를 혹사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에서 24시간 벗어나지 못한다. 근무 시간 중에는 내내 PC를 쳐다보고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계속해서 뇌를 혹사하면 우울증 등 심리 질환이나 만성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유일하게 뇌를 쉬게 하는 방법은 주의를 한 가지에 모으는 것이다. 뇌는 한 가지를 깊이 생각하는 활동은 부담이 적고 오히려 즐긴다. 명상이나 몰입이 한 곳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좋은 방법이다.


지금은 근로시간 준수가 당연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나의 퇴근 시간은 10시에서 11시 사이였다. 반복되는 야근과 잦은 회식으로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이 독서토론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 했다.


마지못해 책을 펼쳤다가 점점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다. 1시간 정도 독서에 빠졌다가 나오니 머리가 맑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는 퇴근하고도 좀처럼 일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샤워하다가 갑자기 깜빡한 업무가 떠오를 때면 미칠 지경이었다. 이미 한참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회사에 갈 수는 없었다. 다음날 팀장님이 업무 상황을 점검하기 전에 재빨리 수습해야만 했다. 그런 생각에 다음 날까지 안절부절못하며 푹 쉬지 못했다.


책을 읽고 책 내용 중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할 때는 일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실수한 일, 깜빡한 일이 떠올라 봐야 집에서는 당장 처리할 방법이 없다. 아무것도 못 하면서 괴로워할 뿐이다. 차라리 실수를 떠올리지 않고 푹 쉬고 다음 날 출근 후 빨리 수습하는 편이 낫다.


취미가 에너지를 주는 건, 명상의 효과다. 내게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활동을 하면서 몰입할 수 있다. 그러니 잠시나마 뇌가 긍정 상태에 머물게 한다. 아울러 뇌가 쉬도록 한다. 유튜브나 스마트폰도 우리의 주의를 빼앗지만, 능동적으로 몰입하기보다는 넋을 잃고 무수한 정보를 보게 한다. 중간중간 마케팅에 노출되며 소비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주의만 빼앗을 뿐 뇌를 쉬게 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arnaud-mariat-45Z6hW1dQMI-unsplash.jpg



즐기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어떤 취미가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어떤 때 재미있고, 언제 희열을 느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취미건 오롯이 즐길 수 없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에게 맞는 취미,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잘 찾아낸다.


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고독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취미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쌓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취미 활동해야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피드백은 실력 향상에 꼭 필요하다. 혼자서는 오래 할 수 없어도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래 활동할 수 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중독 치료도 동료가 함께하면 성공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그렇다고 언제나 관계가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고독을 즐길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독하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의 외형과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란 존재는 참으로 신비롭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바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차분히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들여다보면 내 안의 깊은 우주를 발견한다. 내 안에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주가 있다.


함께하기 어려운 영역 중에는 ‘쓰기’가 있다. 때로는 함께 글쓰기를 하는 그룹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서 글을 쓰기도 하고 각자 쓴 글을 모아 새로운 글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종종 이런 협업이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초고를 쓰는 시간만은 온전히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 몇 시간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멀티-유니버스가 들어있나 놀라게 된다. 세상을 바꿀 듯 포부가 큰 나. 혼자 있기를 즐기고 샤이한 나. 높은 탁월함을 열망하는 열정이 가득한 나.


읽기, 쓰기나 운동과 관련된 취미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혼자 취미를 즐기며 거기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한다. 나는 새로운 배움을 광적으로 추구했다. 무엇이든 새로 배우는 것이라면 게걸스럽게 삼키려 했다. 이제는 4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놀라웠다. 롱보드라는 익스트림한 취미를 선택하는 것은 이런 '배움과 도전의 나'를 고려 한 결정이었다. 내 안에 숨어있는 열망을 충족시켜 줘보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고독을 피하고 싶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은 쓸쓸하다고 여긴다. 저녁마다 팀장님들이 소주 한잔할 사람을 찾는 건 혼자라고 느끼기 싫어서일 것이다. 과감하게 혼자가 되어 자신을 곰곰이 들여다보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알게 될지 모른다.

keyword
이전 05화난, 멘탈 관리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