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당신을 말해준다

자아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by 임희걸

모 대기업 계열사의 B 부장님과 알고 지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팀원의 신망도 받고 있어 조만간 임원이 되리라 예상하고 계셨다. 그런데 임원은커녕 불현듯 사내 정치에 휩쓸려 퇴직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갑자기 출근할 필요가 없어지면 어떤 기분일까? 이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 꾸준히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출근은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처음에는 '그래 내가 갈 곳 없겠어?'라는 심정으로 속이 시원할 것이다. 아침에 늦게까지 푹 잘 수도 있고 장시간 대중교통에 시달리며 고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막상 일주일만 지나도 소속이 없다는 사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정체성 고민이 떠오른다. 불안감이 급습할 수밖에 없다.


B 부장님은 퇴직한 다음 날부터 바로 전국을 돌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장님은 평소 등산을 즐겨왔다. 이전에도 일에서 문제에 부딪히는 때면 산에 오르곤 했다. 처음에는 문제 자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스트레스가 줄어들기 때문에 산을 올랐다. 잊기 위해 취미에 빠져들었다.


신기하게 등산을 하다 보면 문제 자체가 해결된다고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문제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해결 방안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실행에 옮기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결되곤 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 등산으로 작은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실직이라는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일단 몸이 쳐지기 시작하면 멘털이 무너지고,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할까 봐 두려웠다. 몸을 움직이면 적어도 최악의 불안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부장님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느 사람이었으면 바로 이력서를 쓰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을 것이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돈을 마련할지 궁리할 것이다. 부장님은 달랐다. 먼저 몸을 움직이고 멘털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역시 오랜 시간 고민하며 내공을 쌓은 인생의 선배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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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금전적 문제, 미래의 커리어 고민, 가정불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금전 문제를 골똘히 생각한다고 당장 묘수가 떠오를 리 없다. 이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운동화를 신고 공원으로 나가면 된다. 일단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 상태가 긍정적으로 된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대처 능력이 향상된다.


패닉을 피하는 좋은 방법 한 가지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늘 몸이 무겁고 지쳐있거나, 여기저기 아픈 사람이 열정적으로 일을 해내기는 어렵다. 늘 고민에 빠져 우울한 상태로 있으면 어느새 몸도 나빠지기 마련이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이 상하면 마음도 상하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게 된다.


몸과 마음 중 굳이 하나를 택하라면 몸쪽이 더 통제하기가 쉽다. 마음에 근심이 차 있을 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밖으로 나가 열심히 달리고 땀을 흘린다. 그러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정신 상태도 긍정적으로 된다. 기분이 상쾌하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글감도 달리기할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침대에 누워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는 효과가 좋다. 고민이 있으면 쉽사리 몸을 움직일 생각이 안 들 것이다. 당장 돈이 부족한데 산책을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일단 한 번 밖으로 나가 걷거나, 뛰어보자.


등산만 하던 B 부장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 달 정도를 등산하러 다니다 다시 도전해 볼 기운을 얻었다고 한다.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재취업에 애쓴 끝에 한 중견 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 회사에서 임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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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우리 사회는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삶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채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때에는 하나의 자아가 아닌 여러 자아를 갖는 편이 심리적 안전감에 좋다.


직장인은 조직의 논리에 휩쓸린다.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키워나가기 쉽지 않다. 조직은 직원이 다른 자아를 가지고 시선을 돌리는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리더들의 사고는 회사가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시대에 멈춰 서 있다. 아직 ‘일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라는 말을 한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그러니 직장인들도 시각을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


예일 대학의 패트리샤 린빌 교수는 자아의 다양성을 가진 사람이 어려움을 잘 버텨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아 개념이 한 가지인 사람은 고난을 만나 그 자아가 무너지면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다. 반면, 취미를 통해 다양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자아가 타격을 입어도 다른 자아에 의존하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우울증, 불안장애 같은 정신적인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


한국에는 유독 하나의 자아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많다. 이 회사가 내 회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몸 바치는 직장인. 아이의 입시 성공의 자신의 인생 성공인 양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엄마, 평생 한 연구가 자신의 유일한 삶의 목적인 학자.


이들은 이 한 가지가 무너지면 그를 구성하는 자아 전체가 무너지기 쉽다. 우리는 명예퇴직하고 넋이 나가버린 직장인이나 아이가 대학에 간 뒤로 빈둥지 증후군에 빠진 엄마를 많이 목격한다. 내 삶은 여러 단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한 가지가 내 삶의 성공과 실패를 오롯이 결정한다는 사고는 조그만 실패에도 한 사람을 무너트린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다. 자아도 한 바구니에 몰아 담아서는 안 된다.


'비록 직장에서 더 승진하는 등 경력에서의 성공을 달성하지 못하였더라도 어떤가? 나는 여전히 자전거를 탈 때 열정적이고 함께 페달을 굴리며 즐거워하는 동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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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살아가기


한창 피아노를 취미로 하던 무렵에는 음악을 전공자와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악기에 관심이 많으니, 음악을 전공한 이성과도 잘 어울릴 것으로 보였나 보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H를 소개받게 되었다.


몇 번 만남을 가지고 친해지게 되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두 가지 직업적 특성을 가졌다. 음악가와 선생님, 자신을 음악가로 볼 수도 있었고, 선생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그냥 ‘근로자’로 여겼다. 원장에게서 주어진 업무 지시를 받고 그걸 수행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그게 자신의 직업의 실체라고 했다. 예술가로 살 수도 있는데 단순히 월급쟁이로 자신을 치부하는 게 안타까웠다.


많은 이들이 예술가로 살기를 원한다.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가는 삶. 예술가의 삶은 자율성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술가의 삶은 주체적이며, 진취적이다.


우리가 예술가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못한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제 본업은 따로 있으니 취미를 통해 예술가로 살아볼 수 있다. 다만 본업을 바꿀 수 없음을 이해하고, 취미에서 예술의 세계를 발전시키면 된다. 그런데 일과 취미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은 M은 중학교 시절 무용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부모님 말씀에 꿈을 포기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중학교 시절 얼마나 무용을 잘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봐도 무용하는 모습이 참 예뻤어. 다른 친구들은 어려워하는 턴도 멋지게 해내서 학원 선생님이 얼마나 칭찬했는지 몰라."


평생 무용에 미련을 갖고 살아가는 듯했다. 그럴수록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참하게 느꼈다.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다며 한숨을 쉬곤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취미로라도 다시 무용해보라고 권했다. 꼭 프로로서 무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M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제야 무용하면 뭘 해? 돈벌이도 안 되는데."


나는 그가 무용가로 사는 삶을 원하는 줄 알았다. 무용가로서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희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월급쟁이의 삶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무용을 소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M의 푸념이 더는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무용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이 든, 경제력이든, 시간이든 이제는 다 여유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무용에 도전하지 않은 건 그냥 '만약에 그랬으면 어땠을까?'하는 현실 도피일 뿐이다.


누구나 취미를 통해 예술가의 삶을 살 수 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예술의 세계를 동경만 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숨고, 자유, 클래스 101 등 우리가 예술을 배우고 즐기게 도와줄 플랫폼도 넘쳐난다. 누구나 원하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문제는 당신의 마음가짐뿐이다. 진짜 예술가로 살아보고 싶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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