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가 사라져간다
한창 일에 빠져있을 때는 힘들었지만 성장의 기쁨이 있었다. 나날이 실력이 향상함을 느낄 때는 일이 재미있었다. 이렇게만 커리어를 쌓으면 꽤 성공적인 인생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성장의 시기가 끝나고 도취에서 빠져나오니 나는 그냥 나이 많은 직장인일 뿐이었다. 회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녔으면 이력서가 화려해졌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고 나니 프로필이 너무 단조로워졌다. 비슷한 업무를 반복하는 데에서 오는 경험과 전문성? 사내에서는 그게 잘 인정되질 않는다. 중요한 일은 소위 ‘외부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맡기려 했다. 아무리 인사 업무를 오래 해도 외부 컨설팅 회사의 젊은 친구의 말 한마디가 더 비중 있게 다뤄졌다.
“아 그게, 자네가 더 전문가인 건 알지. 하지만 컨설팅 회사의 의견이라는 객관성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그러니 이번 건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자고.”
“이 일은 법무법인에 좀 의뢰해봐. 물론 자네가 뛰어난 건 알지만. 인사 업무라 해도 법률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전문가의 타이틀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회사에서 시니어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이렇게 되기 전에는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나이가 들면 경력도 늘고, 그러면 더 인정받으리라 막연히 짐작만 했었다. 이제야 깨닫는 건, 세상이 그렇게 멋지지만 않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경력을 쌓아왔는데 그게 큰 필요가 없어져서일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4차 산업혁명으로 직장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가벼워져서일까. 그냥 열심히 살면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지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는 뭘 위해서 일해야 하는 거지?
리처드 리스벳 교수는 <인텔리전스>에서 동아시아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그가 조사한 동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가족에 큰 가치를 두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건,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은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가족을 중심에 두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는 자신을 갈고닦아 집안을 일으키고 국가와 세상에 이바지한다는 유교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서양인들은 개인의 성취와 만족이 중요하다. 서양 학생들에게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나에게 이득', '나를 위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리스벳 교수는 신과 개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기독교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그럼 우리의 가치관은 어떨까.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1인 중심 사회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2%나 된다. 가구의 형태 중 1인 가구의 비중이 가장 높다. 우리에게서 가족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는 동기가 사라지고 있다.
기존에 사회를 움직이던 동기가 축소되면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이제는 ‘부자 되기“ 형태의 경제적 성취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부의 성취는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 되었다. 우리가 실제 도달할 수 있는 경제력에 비해 눈높이가 올라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는 데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소비가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소셜 미디어는 이런 자본주의와 아주 잘 맞는다. 예전에는 평범한 해외여행만 다녀와도 돌아와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제는 어지간한 여행지를 다녀와서는 말도 못 꺼낸다. 더 멀고 아무나 가기 어려운 관광지를 찾아야 한다. 최고급 풀빌라나 인피니티 풀이 포함된 고가 여행 정도가 되어야 타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사람들은 더 높은 부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10여 년 전 <맞벌이 부부 10년 10억 모으기>라는 카페에 가입했다. 절약하고 재테크를 통해 자산 10억 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개설된 카페였다. 그때는 10억이면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좋은 차를 사고도 어느 정도의 금융자산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10억으로는 집 한 채 사기 힘들다. 그러니 고작 10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없다.
이솝 우화에는 높은 곳에 매달린 포도를 따려다 실패한 여우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는 결국 포도 따기에 실패하고는 '저 포도는 시고 맛이 없을 거야'라며 발길을 돌린다. 이 우화는 인간의 심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자신의 목표와 현실의 간격이 크면 도전하기보다 포기한다.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다.
21년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 4천만 원이다. 이것은 월 300만 원씩 30년간 저축해야 가능한 금액이다. 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이 월 300만 원 저축을 시작할 확률이 높을까?, 그냥 돈 모으기를 포기할 확률이 높을까?
'우리 집안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 2가지 이유가 모두 사라진 한국 사회에서 직장인은 무엇을 위해 열정을 바칠 것인가.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구의 청교도적 세계관이 근대의 직업 정신을 낳았다고 말한다. 청교도 세계관에서는 직업을 하늘이 내려준 소명으로 본다. 인간은 이 소명을 성실히 수행함에 따라 세상에 이바지한다.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서구의 직업관에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직업은 일종의 소명이었다.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나의 직업에 헌신해야 했다. 산업화 세대는 비록 급여가 부족해도 나를 위한다는 신념을 직업을 수행했다.
시장경제가 심화하면서 우리는 직업을 시장가치로 환산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기여와 상관없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최고의 직업으로 인식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방관이나 간호사가 되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돈 많이 버는 일보다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남아 있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대기업 임원, 변호사, 의사를 꿈꾼다.
디지털화의 진전은 기술이 직업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기술에 의해 직업의 가치가 상실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직업의 소명 의식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음식점과 카페의 주문 키오스크는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쉽게 버려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고객에게 주문을 받는 일은 가장 단순한 종류의 서비스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활동인 <소통>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여기에도 직업에의 소명이 존재했다.
눈을 맞추고 미소를 보내고, 상냥한 말씨를 사용한다. 이 짧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의 만족감을 높이려고 했었다. 키오스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고객 접점에 근무하는 직원일수록 강도 높은 CS 교육을 받았다. ‘최전선에서 고객 만족을 위해 애쓰는 전사’라며 그들을 추켜올렸다.
소통을 대신하는 기계의 등장은 소통 업무가 가장 먼저 버려질 대상임을 주지시켰다. 더는 누구도 고객과 소통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비용 절감을 위해 빨리 없어져야 할 일일 뿐이다.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행하는 단순한 의사결정이 일의 가치를 변화시킨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비용 절감이라는 목적으로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 일은 정말 가치가 있어’, ‘나는 일을 통해 타인을 돕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어’라고 긍정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친구 T는 법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었다.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음에도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단순히 경제적 보상으로만 따지면 변호사가 나을 것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학자로서의 성취감을 얻고 학문 발전에 공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교수가 최고로 연봉을 많이 받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이제 T는 강남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외제 차를 모는 변호사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아이들이 묻기 때문이란다. 아빠는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면서 왜 친구 아저씨들보다 돈이 없냐고. T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돈 많이 버는 직업만으로 선호하면서 일에서 급여 이외의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내 일이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열정을 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받은 만큼만 일하고 손을 떼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다.
우리에게는 성장, 성취, 관계 향상의 욕구가 있다. 단순히 돈벌이로 전락한 직업에서는 이 중 어느 것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취미에서 성장과 성취를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