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일보다 좋은 이유

취미는 가슴이 뛰게 한다

by 임희걸

몇 년 전 친구 집을 찾았다가 처음 보는 물체를 발견했다. 빈방에 높이 1.5m 정도의 길쭉한 투명 플라스틱 관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내가 신기해서 한창 바라보고 있었더니 친구가 그 물체의 용도를 설명해 주었다. 그 물건은 수조였다. 투명 수조에 물을 담아놓고 낚시찌를 띄운다. 낚시에서 최적의 찌 높이를 찾기 위한 실험 장치였다. 친구로 1시간 단위로 찌와 바늘이 물에서 어느 정도 가라앉는지 수첩에 기록했다.


단순한 장치로 보이는데 가격이 꽤 비쌌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수요가 많은 상품은 아니고 일부 전문가만 사용하는 장치라 한정된 수량을 만들다 보니 그런 모양이었다. 친구는 이미 기본적인 낚시용품을 꽤 돈을 쓴 상태였다. 그런데 낚시를 위해 이 정도까지 깊이 연구하려고 추가적인 비용과 노력을 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취미에 왜 이렇게까지 진심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지, 이유가 어딨어."


요즘 가장 빠르게 확산하는 취미 중 하나가 서핑이다. 여름이면 서핑 스쿨이 엄청 활기를 띠는데, 그 열기가 사계절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친구 중에서도 서핑을 즐기는 친구가 있어 물어보니,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함께 서핑에 도전해보았단다. 재미있는 점은 서핑을 시작할 때 어른과 아이의 심리가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냥 재밌어서 서핑한다. 놀이 자체가 목적이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반면 어른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다. 멋져 보이고 싶다. 실력을 키워 서핑 사업을 해보고 싶다. 남들이 많이 하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등등.


재미로 시도하면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게 서핑이지만,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동안은 실패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명상하는 이들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목표를 달성했을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을 즐기면 굳이 무언가를 변화시키려 애쓸 필요가 없다. 굳이 더 나은 상황에 도달하려고 발버둥을 칠 필요가 없다.


일보다 취미가 나은 이유는 과정 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얼마나 결과만을 위해 살아왔는가? 결과를 위해 살면 성과가 없는 과정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아무리 좋아하고 아무리 애를 썼어도 결과가 없으니 그뿐이다. 결과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안절부절못해야 하고 즐거워하지 못한다. 학창 시절의 시험의 딱 그랬다. 배움을 즐겼고 시험을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했어도 합격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과정이 좋았으니 그걸로 됐다, 그렇게 말해줄 조직은 어느 곳에도 없다. 조직 자체가 성과를 얻기 위해서 존재하므로. 과정을 존중받는다는 건 지나친 생각일 수 있다. 그러니 조직에 왜 과정은 보아주지 않느냐고 항변하지 말자. 일은 일로써 최선을 다하고 과정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활동에 전념하면 된다. 그래서 취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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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에 진심이 담긴다


우리는 취미라 하면 응당 남은 시간에 여유롭게 하는 행위라 짐작한다. 그런데 막상 취미에 임하는 사람들을 보면 꽤 진심이다. 시간과 돈 투자는 기본이다. 엄청난 노력을 쏟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까지 털어 넣는다.

인간은 탁월함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적당히 살다가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남과 다른 탁월함을 좇으려는 욕구가 있다. 설사 중간만 가는 평범함이 좋다고 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때 탁월함을 좋아하다가 이제는 포기했거나, 큰 실패를 겪고 낙담했을 뿐이다. 그도 과거 언젠가는 틀림없이 탁월함을 추구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고궁을 찾는다. 아이들에게 역사도 알게 해 주고 도심 속에서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고궁에 들러 옛 건물을 꼼꼼히 살피다 보니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퀄리티로 만들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까짓 지붕이 비를 잘 막으면 그뿐이지 알록달록한 단청을 입히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최고 수준의 기술로 몇백 년을 버티는 단청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냥 화려한 색칠 정도로 치부하기엔 그 기술이 정교하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은 재건 과정에서 결국 단청 복원에 실패했다. 현대의 방법은 온갖 비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색을 입힌 표면이 모두 벗겨지고 일어나 버렸다.


옛 도공은 탁월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문받은 것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다. 누군가는 이걸 장인 정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예술혼이라 한다. 용어야 어쨌든 온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완성작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게 바로 '일의 맛'이다. 과거에는 일의 맛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래서 취미에서 이런 맛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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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가슴을 뛰게 한다


50을 넘은 선배님께서 '평생을 아이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종종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가 있어 놀고 웃고 즐기고 싶어 한다.


아이처럼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에 몰입해서 노는 것처럼 사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에 빠진 아이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놀이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일을 할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하지?'라며 일을 하는 이유는 묻는 걸까?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은 온전히 성과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성과가 없으면 일이라는 수단은 의미가 사라진다. 일에서 성과를 내기에 실패하는 때가 꽤 많다. 현대 기업의 일은 무수하게 세분화, 분업화되어 있어서 누구의 성과인지 평가하기 어렵다. 심지어 성과가 났는지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인생을 일처럼 성과의 수단으로 보게 된다. 어떤 성과가 있었느냐로만 판단한다면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순간순간의 장면들을 인생의 의미로 삼고 놀 때처럼 살아가야만 인생의 참 의미를 느끼게 된다.


삶은 하루하루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른은 취미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고 이 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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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실패해도 되고, 짭짤한 성공도 맛보게 해 준다


롱보드를 즐겨 타는 공원에 아내와 함께 간 적이 있다. 아내는 롱보드에서 떨어지고 넘어지고 구르는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니, 중년에 이러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나이도 많은 당신이 넘어지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못 보겠어."


롱보드를 타다 보면 넘어지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피아노를 연습할 때도 아무리 연습을 반복해도 선생님이 지시한 리듬대로 곡을 연주할 수 없었던 적이 많다. 취미가 좋은 점은 마음껏 실패해도 좋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이든 일터에서든 실패는 달갑지 않았다. 작은 시험 한 번, 보고서 한 장에도 마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좌절했다. 작은 실패가 반복되면 나의 전반적인 평가가 하락하고 결국은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괴로워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데도, 당시에는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전체의 실패인 것처럼 몸서리쳤다.


실패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대의 취미 중에 롱보드가 최고일 것이다. 레슨을 받았던 선생님들 모두가 넘어지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롱보드는 바퀴가 꽤 단단하며 작아서 작은 나뭇가지나 돌조각에도 걸려 넘어지기 쉽다. 이 취미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몸이 내동댕이쳐지는 일은 일상에 가깝다. 실수와 실패가 잦아지니 이건 참 별일 아닌 게 되었다. 어느 순간 실패를 실패라고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성공하려면 실패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왜 그렇게 작은 실패를 두려워할까?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상을 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길이다. 실수하고 실패하게 되지만 실패조차도 즐거운 경험이 된다. 초보는 주변의 기대에 부담을 느낄 일이 없다.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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