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년의 나이에 롱보드를 타고 있어요

by 임희걸

내 나이 46살에 46인치의 롱보드에 처음 올랐다.


무엇보다도 넘어지고 다칠까 무서웠다. 그러나 희열이 곧 두려움을 잊게 해 주었다. 바퀴가 굴러갈 때면, 일에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상쾌함을 느꼈다. 롱보드를 타는 순간에는 아무런 고민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다 처리하지 못한 회사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녹아내리는 주식 계좌 같은 온갖 굴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있었다.



내 취미의 히스토리


피아노 4년, 글쓰기와 독서토론 11년, 롱보드 2년. 내 취미의 역사다. 그 외에도 쿠킹을 해볼까 하여 넉 달간 요리학원에 다녔고, 한동안 미술 관람을 위해 열심히 수도권의 미술관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꽤 오래 조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곁가지들은 취미의 역사에서 제외했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즐기고 어느 정도 기술이 늘어 내 삶에 자취를 남길 수 있어야만 ‘진짜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취미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울트라 캡숑 인사 전문가’ 한창 열심히 일하던 시절의 인터넷 카페 닉네임이다. 인터넷 카페 닉네임까지 인사 전문가라는 말로 통일했을 정도로 인사 분야를 사랑했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으려고 노력했다. 정말 일을 잘해서 이 분야에서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열망이 집착이 되고, 집착이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바람이 정도를 지나치기 시작했고 나 자신도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다시 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한다. 이런 게 중독이다. 나는 일 중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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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태를 경험했다. 내 대학 4년은 끊임없는 대출 상환 독촉과 함께였다. 젊음의 낭만보다는 실패의 처절함만을 피부로 느낀 시기였다. 취업하자 집안의 빚을 대신 갚아보겠다고 발버둥 쳐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일은 생명의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졌다. 월급 외에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을 탈출한 대안이 없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자 늘 극단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살았다. 혹시라도 일에 차질이 생기면 인사 평가를 나쁘게 받을 것이다. 조직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어 도태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야 어리고 팔팔하니 회사에 내가 필요하겠지만, 중년이 되면 그 조금의 필요성도 사라지겠지. 그렇게 순간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런 암울한 메시지를 되뇌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불안감에 쫓겨 밤낮없이 일했다.


한편으로는 일만 잘해 내면 다른 모은 인생이 술술 풀릴 것 같은 환상에 빠져있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가? 좋은 인사고과를 받아 연봉도 올라가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진다. 연인은 업무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감동해 나를 지지하고 좋은 관계가 계속된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니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족 간의 관계가 더 좋아진다. 이게 나의 착각이었다.


‘일만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의 프레임은 보기 좋게 깨졌다. 회사에서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후배가 불만을 털어놓으면서부터였다. 후배 E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선배가 다른 부서에 가든, 제가 가든 이제는 뭔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네게 일도 가르쳐주고 우리 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잖아. 이제는 네 실력이 좋아져서 우리 팀워크가 최상이야. 이대로만 한다면 옛날 선배들보다 훨씬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더는 이렇게 벼랑 끝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갈 순 없어요. 선배는 너무 날카롭고 매사에 비관적이에요. 마치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세상이 선배를 잡아먹을 듯이 불안해해요. 늘 웅크리고 바늘을 바짝 세운 고슴도치 같아요. 진짜 문제는 그 불안이 전염된다는 사실에요. 저도 어느새 인가부터 업무가 잘못될까 항상 초조해하기 시작했어요.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초조와 불안이 사라지질 않아요. 게다가 그런 마음을 집에까지 가지고 가게 되었고요.”


당시의 나는 매일 야근을 반복하며 어마어마한 업무를 소위 쳐내고 있었다. 너무 업무량이 많았기 때문에 일을 완성한다는 느낌보다 대충 쳐내는 느낌이었다. 일을 많이 하는 대신 잘한다는 말을 곧잘 들었고, 그 덕분에 팀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영향력이 큰 만큼 나의 불안이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결국 후배 E는 오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E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스스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내면에서 거기에 대해 어떤 반박도 생겨나질 않았다. E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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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을 바꾸기 위해 취미를 시작하다


2달을 고민하다 악기를 배워보기로 했다. 매일 음악을 접하면 내 날카로운 성격이 조금 느긋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악기 연주와 인격 도야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 음악가 중에서도 괴팍하고 성품이 나쁜 사람이 있으니까.


그때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면 나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6개월 피아노 학원에 간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경험해 본 악기라는 생각에 피아노를 골랐다. 바로 회사 근처에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학원까지도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냥 집 근처에서 수강하기에는 뭔가 불안했다. 일에서 진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4년여 기간 동안 피아노 연주는 내 취미로 잘 정착되었다. 피아노 덕분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날카로운 내 성격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후배 E가 말했던 것처럼 불안과 초조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다.


언제까지고 악기 연습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니 악기 연습은 사치였다. 육아는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고난이었다. 아내는 내가 취미 활동을 하는 것을 지지하고 도와주려 애썼다.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지다며 그만두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유독 잠투정이 심했다. 2~3시간 이상을 연달아 잠들지 못했다. 당장 몇 시간 자지도 못하는데 취미를 즐길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육아가 시작되며 피아노는 내 취미 목록에서 사라졌다.


아이들이 말을 떼기 시작하자 아내는 어마어마하게 책을 사대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키우기로 했다나. 당시 나는 책값이 그렇게 많이 드는지 몰랐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지금까지 소나타 한 대 값 정도를 책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당연히 우리 집에는 책이 넘쳐났고 책 읽는 문화가 생겼다. 나도 평소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둘의 방향성이 잘 맞았다. 거실에서 TV를 치우고 책장으로 채워 도서관을 만들었다. 지금도 우리 집에 손님들이 오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책이 참 많네요’라는 말이다.


꽤 많은 책을 읽고 나자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독서토론에 참여하고 글을 쓰는 분들은 모두 이런 단계를 겪는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독서 모임을 하겠다고 벌이는 게 아니다. 독서에 빠져들어 이 분야 저 분야의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은 후의 아쉬움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읽는 것을 서로 나누는 모임에 참여한다. 자꾸 생각을 나누다 보면 그걸 적는다. 메모로 시작해 책 집필에 도전한다.


나도 이 과정을 오롯이 겪었고 11년이라는 시간을 거쳤다. 어느새 책을 출간한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읽고 쓴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롭다. 내가 계획해서 그렇게 가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점점 활동이 깊어진다. 읽으면 말하고 싶은 욕구가, 말하다 보면 쓰고 싶은 욕구가 떠오른다.


악기 다음에는 읽고, 토론하고, 쓰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더니 40대도 중반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딸아이는 나를 닮아서인지 도통 운동을 싫어했다. 자리에만 앉아있으려 해서 재미를 붙일 운동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배드민턴도 쳐보고, 인라인스케이트 강습을 시키기도 했다. 여자아이들 키 성장에 좋다는 필라테스나 요가 학원에도 데려가 봤지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롱보드 여신이라 불리는 여성들이 보드 위에서 댄싱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롱보드는 스케이트보드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스케이트보드에 비해서 데크의 길이가 더 길고 무거운 것을 롱보드라고 부른다. 작고 가벼운 스케이트보드는 점프하거나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역동적인 동작에 알맞다. 반면, 롱보드는 데크가 넓어서 주행 중인 데크 위에서 스텝을 밟는 <댄싱>부터 보드를 회전시키거나 점프하는 <트릭>까지 좀 더 다양한 기술 범위를 갖는다.


딸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순순히 도전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보드를 구입하고 2~3번 탔을까. 결국 우리의 롱보드는 세상 모든 운동기구와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다. 발코니 한편에 방치되고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당근마켓으로 갈 보드였다. 중고로 롱보드를 내놓으려고 살피던 중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라도 한 번 타 볼까?’ 그렇게 집 앞 아스팔트에 보드를 들고나갔다가 롱보드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롱보드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도는 얘기가 있다. 롱보드가 나에게 맞는지 궁금하다면 한 번만 거기 올라가 보면 된다. 한 번만 타 보면 롱보드가 나와 궁합이 맞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딱 그렇게 될 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롱보드에 오르고 넘어지지 않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1~2m를 나아갔다. 무지무지하게 느린 속도였다. 그 짧은 찰나에도 ‘아, 이건 내 거다.’라는 감이 왔다. 신기하게도 롱보드에 오르는 순간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또 다른 나의 취미 인생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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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포트폴리오 꾸리기


일은 우리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일을 잘한다고 삶의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기왕이면 일을 잘하면 좋고, 그러기 위해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그건 일생에서 다루어야 할 여러 문제(?) 중 하나다. 그뿐이다.


대학 시절 ‘투자론’ 수업에서 교수님은 책에 나오는 투자 기법 중에서 유일하게 현실에서도 통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고 하셨다. 마코위츠라는 학자가 제안한 <포트폴리오 이론>이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격언으로 잘 알려진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라 펀드매니저는 전체 자금을 주식, 채권, 실물자산, 대체투자 등으로 투자 섹터를 나누고 그 섹터 내에서도 여러 가지 종목으로 분산한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분산 투자하는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투자의 세계에서 기관투자자가 개인투자자를 이기는 때가 많다. 단순히 지식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분산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하는 사람은 늘 주식에만,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은 늘 부동산에 투자한다. 하지만 펀드매니저는 주식 시장이 하락장이면 채권에 투자하는 식으로 위험을 분산한다.


우리 인생도 이렇게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하다. 인생이란 하나의 영역에서 큰 성과를 이뤄도 다른 영역을 놓치면 행복할 수 없다. 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도 건강을 잃으면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재테크로 짭짤한 돈을 만지게 되었어도 가정불화가 심하면 하루하루가 편하지 않다.


당연히 시기적으로 한 섹터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회사에 입사해 3~5년 정도는 일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최대한 일을 열심히 하면서 배워야 할 때다. 결혼을 막 했다면 배우자와 결을 잘 맞추어 좋은 문화를 가진 가정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가 최우선이 된다. 가족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 회사에만 매달리거나, 일 실력을 키워야 할 때 취미에만 치중하면 조화로운 인생이 되지 못한다.



취미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 외에 다른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차피 우리 삶에서 일이란 제외할 수 없다. 설사 로봇이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게 되어도 우리는 무언가 다른 일을 찾을 것이다. 일하지 않는 삶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일이 삶 전부라고 여기는 시대도 끝나가는 중이다. 취미나 여가가 에너지를 주고 창조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건강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 웰빙(Well-being) 니즈도 커졌다. 일과 취미, 여가나 인간관계의 조화로운 운영을 통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에게 취미의 의미는 단순히 ‘잠시 재미를 추구하는 것’, ‘휴식을 위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일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인생 포트폴리오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취미는 일이 줄 수 없는 배움의 기쁨, 탁월함의 추구, 새로운 만남을 제공한다. 쉬기 위해서 취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더 성장하기 위해 취미를 통해 단련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취미는 단조로운 인생의 다양한 면을 발견하게 한다. 취미를 통해 커리어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이 있다. 취미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풍성한 관계로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취미가 새로운 일이 된 사람도 있다. 취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업무에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남는 시간에 뭘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인생을 한껏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취미를 집중할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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