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들 거기 있어 줄래요?

글쓰기가 일기 쓰기와 다른 이유

by 으네

“나도 온전하지 못하지만 너의 너다움을 위해 나를 보태어야겠다.”


첫 시집의 제목이었을 것이다. 내가 시인이 되었다면. 기억에 남는 긴 제목들이 있다. 박준 시인의 시집 제목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가수 악동뮤지션의 노래 제목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등이다. 다시 봐도 주옥같은 제목 들이다. 이 제목들이랑 겨뤄봐도 손색없는 내 마음속 일등, 위의 문장은 친구 지니가 해준 말이었다. 지니는 대학교 때 만난 친구다. 왕복 5시간의 통학을 해내던 나는 딱 한 번 늦잠을 잤다. 그날은 중간고사 시험 날이었다. 통학하며 시험을 못 본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딱하게 여긴 지니는 선뜻 방 한 칸을 내주었다. 지니는 방뿐만 아니라 엄마가 보내주시던 밑반찬과 따뜻한 마음까지 나눠주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끝없이 대화하며 산책하던 잔디밭은 지금도 그립다. 한 번은 구월동에서 신연수역인 집까지 걸어온 일이 있다. 육교를 하나 건너야 했는데 영화 <비긴어게인>의 OST 중 ‘Lost Stars’를 크게 틀어 놓고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신나게 춤을 췄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조명 삼아 우리만의 무대를 꾸몄다.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사냥철에 도망치는 양과 같은 우리였지만 함께라서 즐거웠고 길을 잃은 별이었지만 서로 덕분에 마음속에 작은 불빛만은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 지니가 나에게 저 말을 건넨 건 준비하던 시험에 3번째 낙방하고 힘들어하던 코끝이 찡한 겨울밤이었다. 시험 낙방은 내게 조금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인생에서 노력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권선징악만큼이나 믿고 있었는데, 노력하면 된다고.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다른 이들의 노력이 나의 노력을 넘어선 것인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명대사는 상황과 맥락에서 나온다지만 사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저 말만 대화창 공지사항에 박아두고 코끝이 찡해질 때면 종종 꺼내 보곤 한다.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순간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기 때문이다. 혼자서 고군분투하기엔 너무나 벅차지만 함께라서 힘이 나던 그 시절 말이다.


브런치 도전 강의를 들으면서 여러 지니를 만났다. 나의 글이 글답기 위해서 옹골진 피드백을 보태주던 같이 수강하는 작가님들이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문장을 무기 삼아 첫 번째 글을 썼었다. 먼저는 남편에게 보여줬다. 사족이 많다고 했다. 무시했다. 첫 번째 글인 만큼 멋진 요리로 대접해야겠지만 나의 칼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고 간도 제대로 맞출 자신이 없었다. 생식을 가져다 놓고 알아서 드시길 바랐다. 나름 구색은 맞췄다며 합리화했다. 강의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짧은 강의를 들었을 때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의 미완성된 요리보다 요리사의 태도가 부끄러웠다. 애써 간도 안 된 내 요리를 맛보았을 손님을 위해 ‘퇴고’라는 최소한의 정성을 빼먹다니 속상했다. 역시나 손님들의 입맛까지 정확했다. 독자의 눈은 날카롭고도 정확하다. 작가로서 나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고 양념을 쳐주시기 시작했다. 마음은 따뜻했지만 참 매웠다.


나에게 방 한 칸을 내주었던 지니가 고마웠던 것처럼 시간을 내서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가 일기 쓰기와 다른 이유는 하나다. 나 말고도 읽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강의가 끝난 지금, 나는 새로운 독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글아 이제 그만 노트북에서 나와 브런치라는 파도를 타고 저 넓은 바다로 나가렴. 아무도 만나지 못할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 단 한 명의 독자는 있을 거야. 남편한테 지금 당장 보라고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