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은 어디에서 오나?

고마운 얼굴들, 따뜻한 말들이 주는 힘!

by 으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써볼까?’


작가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라던가? 나는 아직 팔지는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로 살고 있긴 하다. 전 국민이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다. 그 당시 나 또한 녹록지는 않았다. 강사로 일하던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갑작스레 백수가 되었고, 기약 없는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던 구인란에서 겨우 건져 올린 6개월짜리 기간제 일자리로 대학교 입학 사정관에 지원했다. 면접관이 내가 가진 자격증을 보고 “할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왜 굳이 이 자리에 왔느냐”라고 혼잣말처럼 물었을 땐, 그저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합격. 지원자가 나 하나였다고 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현실은 오르막길이었다. 말 그대로 오르막길. 학교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참고로 나는 8월 1일 입사자였다. 아침이라고 봐주지 않는 햇볕을 맞으며 땀범벅이 되어 출근했다. 입사 3일 차. 그날도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 사무실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복도 끝에서 양복 입은 중년 신사 한 분이 나를 향해 펄펄 끓는 분노를 터트리셨다.

“사람 불러 놓고 이게 뭐 하는 거야? 내가 에어컨은 기대도 안 했어. 아무리 그래도 문은 열어 놔야지! 이봐, 거기 문 안 열어?”

어릴 적 “이 할망구가 기차 화통 삶아 먹었나?” 하시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여름 방학 동안에만 특강을 하러 오는 외부 강사님이었다. 강사 대기실 문이 잠겨 있었고, 가장 먼저 마주친 내게 그 화를 고스란히 쏟아내셨다. 총무과에 전화해서 문 비밀번호를 확인하는 사이, 팀장님이 사무실에 도착하셨다. 뒤통수에 대고 소리 지르는 강사님과 당황해 우왕좌왕하던 나를 본 팀장님은 내가 무슨 큰 실수라도 한 줄 알았다며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하셨다.

폭풍이 지나간 후, 사무실 은 고요했다. 그제서야 내 심장도 벌렁거렸다.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벌받은 것만 같아서 억울하고 속상했다. 학원에서 짐 싸던 날의 막막함,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온 면접에서의 힘 빠지는 면접관의 말까지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던 그때 파티션 너머로 소곤거리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외부 강사 관리 자기네 담당이지? 아침에 일찍 오신 강사님이 우리 직원 잡고 있더라. 안내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팀장님은 총무과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고 계셨다.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가 내 귀에는 대포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흔히 드라마에서 볼 법한 “우리 애는 잘못한 거 없어요.”를 외치며 자식을 치마폭에 감싸던 어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쓰나미가 잔잔해졌다.


사무실 한편에서 부하직원을 위해 대신 높여주던 팀장님의 목소리,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단단한 다짐. 그런 순간이 모여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나의 글감은 지나치기 쉬운 순간, 마음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따뜻한 말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마음을 건드린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흐릿해지지 않는다. 갇혀있던 감정은 문장이 되고, 흩어졌던 추억들이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혼잣말로 답해본다.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남을 위해 대신 화내주냐고! 자기 일도 아닌데, 정말 멋지단 말이야. 근데 다음은 또 누구 이야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