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영감님!

영감~ 왜 불러~

by 으네

글쓰기의 영감(靈感)이 떠오르지 않는다. 등잔 밑이 어둡지 않도록 제일 가까운 나의 영감(令監)을 바라본다. 왜 내 남편은 하나일까? 우리 남편 같은 남자 한 명 더 있으면 아직 결혼 안 한 내 친구들에게 당장 소개해 줄 텐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결혼 바이럴’로 통한다. 숨 쉬듯 결혼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결혼 2년 차. 신혼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여전히 신혼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내 눈에 남편이 들어온 순간을 기억한다. 아직은 늦은 봄, 덥지 않은 날씨였지만 예식 복장을 겉옷으로 입고 있었기에 연신 땀을 닦아가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띠로리! 에어컨 켜지는 소리.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더니, 남편이었다. 남편이 에어컨을 켜고 날개를 내 쪽으로 조정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한 후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남편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더워서라고 했지만 나는 안다. 그가 나의 작은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남편이랑 연애하던 시절, 우리 오빠는 소를 키웠다. 소밥은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주어야 한다. 오빠가 종종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그 일은 내 몫이었다. 대형 사료통에서 사료를 담아 여물통에 마리당 두 바가지씩 퍼준다. 그다음 지푸라기를 줘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마시멜로같이 포장된 질긴 비닐을 벗기고 나면 엉켜있는 지푸라기를 손으로 직접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먼지도 날리고 무게도 있어서 적지 않은 힘이 필요했다. 물론 그 힘은 남편이 써줬다. 하루는 옆집 우사 사장님이 소밥 주는 여동생도 보기 힘들지만 그 여동생이랑 같이 오는 남자친구는 세상에 없을 거라고 하셨다. 이제 세상에 그런 남자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남편이 되었으니 말이다.


흔히 남자들은 결혼하고 나면 변한다고 한다. 우리 남편도 변했다. 연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는 말을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남편과 복숭아를 먹다가 “정말 맛있다.”라고 말이라도 한번 하면 남편은 포크질을 멈춘다. 나 더 먹으라고. “초당옥수수 빙수가 새로 나왔데.”라고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인데 퇴근하고 온 남편의 손에 들려있다. 다이어트는 다음 생에 하기로 하자. 우리는 거실의 책상을 식탁으로 쓴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읽는 걸 좋아해서 책 더미 옆에서 식사하기는 언제나 있는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책을 펼쳤는데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안 났는데, 남편이 읽던 페이지를 표시해 둔 것이다. 역시 쏘서윗. 영어 ‘so sweet’에 남편의 성인 ‘서’씨를 넣어서 붙여준 애칭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쏘서윗이 so sweet한다. 설거지하는 남편 뒷모습에 하트 눈을 발사해 본다.


남편 자랑이라고 쓰고 나의 영감이라고 읽는다. 아직 글쓰기 능력은 한없이 부족할지 몰라도 남편의 사랑을 원동력 삼아 써 내려간다. 밑 빠진 독일지라도 물속에 풍덩 빠트리면 가득 채워지는 법. 덕분에 소중하지만 작고 너무 소소해서 그냥 지나가 버린 일상들이 반짝일 수 있다. 영감이 내 옆에 있는 한 글쓰기는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니 설렌다. 결혼 바이럴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한마디 더 해본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결혼은 어때요? 영감이 생깁니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