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도망가!
나는 왜 자꾸만 쓰고 싶을까?
산에 발 디디면 등산이다. 정상에 도착했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개인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얼마 전 지리산 일출 산행에 도전했다. 백무동 코스. 분명 초보자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라고 했는데 이건 말이 안 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올라가냐는 말을 만 이천 번쯤 내뱉었을 때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은 장터목에서도 1시간 정도 더 올라가야 한다. 자고 가기로 한다.
장터목에서의 일몰은 장관이었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 해는 그 자리에 우리의 발을 꽁꽁 묶어두고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다음은 칠흑 같은 어둠 속 자태를 뽐내는 별들의 차례였다. 또렷하게 보이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으로 수많은 별들을 휘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 4시. 천왕봉으로 향했다. 차라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손전등이 비춰주는 단 한 걸음씩만 열심히 내딛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올랐다. 천왕봉에서 본 일출을 잊지 못한다. 어제 붉게 타오르던 태양이 오늘도 꽃단장하고 나타났다. 나란히 줄 서 있는 산들을 아래 두고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 사이로 찬란히 떠올랐다.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보며 이렇게 감탄하다니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나 보다.
내려오는 이번 주는 무슨 글을 쓸지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 글쓰기는 등산과 닮아 있었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정상을 마주하는 성취감. 내 작은 발이 움직이고 움직여서 1,915m의 정상을 밟았다니 정말 뿌듯하다. 뿌듯함은 천근만근이었던 몸에 새 힘을 주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걸 언제 다 쓰냐고 만 이천 번쯤 생각하다가도 한 편씩 끝내고 나면 성취감 폭발이다. 단어들을 차곡차곡 모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이 또한 얼마나 뿌듯한지. 이 맛에 글 쓴다.
지리산 등산을 마치며 조용히 되뇌어 본다. ‘결국 쓰는 사람이 작가다.’ 한강만 작가가 아니다. 맙소사, 한강만 작가라고 생각했으니 너무 벽이 높았다. 이소라의 노래 <Track 9>의 가사처럼 알지도 못한 채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고독하게 사는 것도 모자라 나는 나를 너무 다그치며 살고 있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는데 나만이 나에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 부족하게 만들고 작아지고 있다. 나는 왜 쓰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쩌면 나의 삶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일이든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직성이 풀리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서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다가 결국 도망가 버린다. 지리산에 다녀온 것처럼, 오늘의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처럼 너무 많은 생각은 뒤로하고 ‘그냥’이라는 말로 심플하게 살아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제는 ‘그냥’이라는 말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