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세돌을 맞았다.
태어난 지 36개월, 세돌은 나에게 의미가 깊다.
36개월까지는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를 돌보겠다는 개인적인 소신을 가졌었고 오늘로써 그 소신을 다했다. 첫째와 둘째가 다섯 살 터울이라 육아만 했던 시간이 총 9년이 흘렀다.
나의 30대 시절 대부분을 아이들을 양육하며 보낸 셈이다. 나는 원래 하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면서 기꺼이 그것을 다 내려놓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내가 세 돌까지 가정보육을 고집했던 것은 흔히 말하는 36개월의 원칙도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일을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직업 특성상 그리고 나의 꿈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훗날,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도 많고 집을 떠나는 날들도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출퇴근이 일정한 직업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36개월 이 시기만큼은 온전히 아이들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나중에 엄마가 꿈을 이루려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시간들이 꽤 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그 반대이다. 나는 내 꿈을 위해 긴 가정보육을 선택한 것이다. 기꺼이 이 시간들을 받아들였다. 조급하지도 않았다. 내 길을 가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정말 많고도 많이.. 하지만 소신껏 행동했다. 강하게 부는 태풍 속에서 혼자 굳세게 버티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아이는 앞으로 계속 기관에 다녀야만 할 텐데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3년만 기다려주는 것도 안 되는 것일까 생각했다. 왜 세상에 온 지 1-2년밖에 지나지 않은 아이를 여기저기서 보내라고 하는지 나는 아이의 때를 기다려 주고 싶었다.
첫째 아이도 36개월이 넘도록 가정보육을 했었다. 4살에 어린이집을 다녀보고 3개월 뒤 가기 싫다고 해서 그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다 5살이 되고 나서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더니 자발적으로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다. 스스로 선택을 했다. 그때부터 등원거부 없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기관생활을 했고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지금껏 잘 생활하고 있다. 첫째 아이를 보며 때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준비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곳을 찾아간다.
세돌, 36개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으로 변하는 시기.. 엄마와 함께했던 찰떡같은 나날을 어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가장 엄마품을 파고드는 시기의 아이에게 가득 품을 내어주었다. 후회는 없다. 이제 나는 기쁘게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감을 응원한다.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꼭 가정보육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처한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므로, 모든 엄마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 아이에게 쏟았던 정성을 살짝 덜어서 이제는 나를 좀 더 살피고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기 시작해야겠다. 긴 가정보육은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와 설명할 수 없는 애착을 나누는 시기였다. 이건 아이와 나만의 느낌으로 남아있다. 아이의 세 돌도 축하하고 여태껏 기나긴 육아기를 보낸 나에게도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