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가기로 하다.
꽤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내던 지난 20대를 뒤로하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기존에 내가 향하고 있던 꿈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찾아온 아이와 엄마라는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인 지 4년- 딸아이는 이제 세 돌을 앞두고 있다.
자아가 형성되는 36개월까지는 온전히 아이를 양육하는 역할에 충실해야지- 하고 맘먹고, 나에게 주어지는 거의 모든 시간을 아이를 보살피는데 사용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난 정말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달이는 이제 언어로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기저귀도 가릴 줄 알게 되었다. 달이가 성장하면서 육아가 조금 수월해져서일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예전 나의 모습이 내면 어디선가 조금씩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배낭을 메고 곳곳을 휩쓸 던 시절에 쓴 글들을 꺼내 보니 내가 이랬었구나, 맞아, 내가 이랬는데- 여행의 기억과 세포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까맣게 잊고 지냈었는지 놀라웠다. 내가 비가 오는 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나는 내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줄도 잊고 지냈다. 비 오는 날은 그저, 아이와 외출이 조금 더 힘들어지는 날 웬만하면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머물러야 하는 날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지난 여행의 나날들이 떠오를 때마다 가만히 누워 생각해 봤다. 혹시 만일.. 내가 여행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인도-
내가 이 육아를 마치고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자꾸만 인도에 가고 싶다.
다른 나라를 생각해 볼까? 몽골이나, 라오스는 어때? 아아. 아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인도가 그려진다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이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피어올랐다.
10년 전, 홀로 인도 전체를 한 바퀴 돌며 북부 다람살라부터 최남단 깐야꾸마리까지 신나게 여행했던 나름 자신 있는 여행지인 인도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혼자서 홀연히 여행할 수 있는 신세가 아니다.. 지금은 한 아이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엄마. 그래 간다면 아마도 아이와 함께여야 겠지. 에이 안된다 안돼. 아이랑 인도는 조금 그렇잖아. 아무래도 인도는.. 혹시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마음을 추스렸다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찾아보니 이미 아이 데리고 잘 다녀온 사람들도 있네.. 이동을 적게 하고 안전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 괜찮을 것 같아. 괜찮지 않을까? 인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은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몇 번의 확신과 망설임이 반복되는 나날들이 천천히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지친 몸으로 거실에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 다큐멘터리를 보던 날이었다. 순간 다큐멘터리 배경지인 라다크를 보다가 마음에 쿵- 하고 울림이 일어났다.
<라다크>
나의 모든 불확실함을 잠재우는 마음에서 울리는 강하고도 분명한 목소리.
<라다크>
아, 그래 난 라다크에 가야겠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린 분명했던 내면의 목소리는 내가 라다크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내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곳, 라다크에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이렇게 분명한 내면의 언어를 듣게 되는 날들이 드물게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난 그 목소리를 따랐고, 그 마음의 언어를 따랐을 때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때마침 남편의 계약직 만료 시점이 다가오고, 달이는 곧 36개월을 넘어서고 때마침 집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까지도 몇 달이 빈다. 이거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인데.. 이거 그냥 확 가버릴까?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이 기회의 타이밍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 지금이다.
가려면 지금 가야 한다.
혹시라도 둘째가 생기게 되면 내가 언제 다시 인도에 갈 수 있을지 도무지! 기약이 없다.
엄마가 인도에 너무 가고 싶어서-
남편과, 달, 우리 가족은 즉흥 인도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