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띄우는 편지

하얀 난닝구를 입은 사나이

by 이방글

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맴맴 세차게 우는 한여름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대자로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와 프로야구 중계가 뒤섞이고 있었고 내 머리맡에는 하얀 난닝구와 반바지를 입고 뚫어져라 TV를 바라보며 거친 탄식을 하는 사나이가 앉아있다. 우리 아빠다.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를 뜨끈하게 틀어놓고 하얀 난닝구 패션을 유지하는 아빠. 엄마는 아빠를 쫓아다니며 옷을 입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문이 열린 화장실 안에는 거울을 보며 얼굴 구석구석을 살피는 아빠의 뒷모습이 보인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까만 머리, 마르고 크지 않은 아담한 키 그리고 새하얀 난닝구를 입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빠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있었고 누가 봐도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그는 나에게 ‘양념 딸’이라는 애칭을 부르며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이면 집에서 가까운 금강산으로 피서를 가곤 했다. 물가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파라솔 아래에서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먹으며 고동을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간 아빠를 기다렸다. 머리끝까지 다 젖은 아빠의 손에는 은색 양동이가 들려 있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고동이 가득했다. 아빠는 양동이를 엄마에게 전해주고 수건으로 머리를 휘휘 젓는다. 나는 엄마 옆에서 버너에 올려진 고동이 빨리 익기를 바라며 끓고 있는 냄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느새 뽀송해져서 내 앞에 앉은 아빠. 아빠가 입은 하얀 난닝구가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새하얗게 보였다.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뙤약볕에 강렬한 햇살 같은 하얀색이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하지만 날카롭고 냉정한 느낌.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르르 웃으며 두 팔 벌리는 아빠의 모습이 내게 남겨진 기억 속의 잔상이다.

더운 날,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을 마주하게 되면 늘 아빠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