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슈퍼맨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중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수영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벚나무가 푸르게 반짝이고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던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계단을 힘차게 올라갔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다. 반가운 마음에 재빠르게 뛰어가며 아빠를 힘껏 불렀다. 언제나 그렇듯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아빠. 집에 안 들어가고 왜 여기에 있냐는 내 물음에 경비아저씨와 이야기 나눈 뒤에 올라갈 거라며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답했다. 나는 끄덕이며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10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힌다는 안내문이 흘러나오는데 갑자기 쿵 하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문쪽을 바라보았다. 한 뼘 남짓 문이 닫히지 않은 상태로 쿵 쿵 하는 소리만 났다. 순간 겁에 질려 말문이 막혀 버렸고 난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니 문틈 사이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어깨까지 들어와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려고 힘쓰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더 터져버렸다. 이 공간이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온통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과 숨통이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은 눈물범벅이 되어 시야가 흐릿해졌다. 아빠의 얼굴을 또렷이 보기 위해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기억은 여기까지밖에 기억나질 않는다. 어느 순간 난 아빠에게 안겨 엉엉 울고 있었고 아빠는 내게 괜찮다며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고 토닥여줬다. 아빠와 함께 10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아빠의 큰 손을 놓지 않으려 힘을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뒤로 나는 폐소 공포증이 생겼다. 창문이 없는 작은 방, 조명이 어두운 엘리베이터나 KTX 같은 공간 속에 있게 되면 나도 모르게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보였던 아빠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게는 주문 같은 순간이다. 아빠만 바라보고 있으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아빠를 생각하다 보면 엇박자로 쉬던 숨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하고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쥔 주먹도 느슨해진다.
공포로부터 구해준 나의 슈퍼맨 아빠.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빠의 얼굴. 아빠라는 존재만으로도 힘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슈퍼맨. 오늘도 아빠를 떠올리며 훌훌 털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