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 베란다에는 오래된 장롱 하나가 벽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젊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보다 더 어린 오빠의 사진들이 담긴 사진첩 대여섯 개가 있었고, 고이 모셔둔 철 지난 담요와 이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요강같이 생긴 항아리 모양의 백색 도자기와 잡동사니들 사이에 직사각형의 소나무 색깔을 띠는 철제함이 있었다. 그건 오빠가 학창 시절에 썼던 몇몇의 부품이 사라진 과학 상자였다. 심심했던 나는 과학 상자를 꺼내 상상 속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고, 실존할 수 없는 기차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만들고 싶은 무언가를 내 마음대로 만드는 걸 좋아했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만들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미술 시간 때 캔버스에 어떠한 주제를 정하고 표현 방식은 내가 하고 싶은 걸로 표현하는 수업을 했었다. 주제가 뭐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정한 주제는 '화투'였다. 정확히 말하면 화투 속 한 가지 그림, 바로 2월을 뜻하는 매화 그림에 있던 두견새였다. 왜 그걸로 정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오로지 화투 그림을 구현해 내겠다는 강한 의지의 감정만 생생하다. 표현하는 방법은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흔히 사용하는 재료가 아닌 색다른 재료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생각 끝에 내가 선택한 재료는 '쌀'이었다. 다홍색과 검은색을 많이 써야 했던 나는 생쌀에 포스트 칼라를 섞어 색을 물들였다. 기다리던 미술 시간이 왔고 나만의 재료(물들인 쌀)로 스케치한 캔버스에 풀을 잔뜩 묻힌 뒤 붙이기 시작했다. 작은 알갱이라 작업이 다소 느리고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던 작업이었지만 하는 내내 재밌다고 느꼈다. 그 당시 담임이었던 미술 선생님은 매시간마다 작업하는 나를 지켜보셨고 어느 날 조용히 나를 불렀다. 예고를 가보지 않겠냐고.
평범함을 원했던 집안의 뜻에 따라 난 집 근처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나는 또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미술 시간에 작은 정사각 캔버스에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릴 때 다들 전통 가옥이나 의복, 전통 마당놀이를 표현해낼 때 나는 훈민정음언해본을 그렸다. 언어도 문화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이거 말고는 표현할 대상을 찾지 못했고 다른 건 하기도 싫었다.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나였다. 생각의 전환을 좋아하는, 잘 하는 사람이었다.
유치하게 느껴지는 단어가 다른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힐 거라는 이유 없는 자신감과 확신에 내 의견을 밀고 나간 적도 많았고(결과는 진짜 뇌리에 박혔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내 머릿속 상상을 실제로 구현해냈을 때 느꼈던 쾌감은 잊을 수 없다.
카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공방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 자신 있었다.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내겐 쉬웠다. 새로운 소재나 형태를 보면 머릿속으로 대충 그려졌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는 한 가지.
[재료는 어디서 살 수 있는 걸까?]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나오지 않았다.(불과 10년 전만 해도 정보들이 거의 없었다.) 어디서 살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실습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꽃, 향기, 오브제, 액세서리 등등 여러 가지를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 원하는 걸 얻어냈다. 그러고 얼마 뒤 코로나가 터졌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시절이 몇 년 동안 이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알려면 더 배우고 시장조사도 가야 했는데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동선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던 시절이었다.) 대면 학습이 금지되고 모임도 할 수 없었다. 소통을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로지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나는 더욱더 갈구하기 시작했고 한국 플랫폼뿐만 아니라 해외 플랫폼까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소재가 있으면 계속해서 관련 영상과 게시물을 봤고 궁금증이 해결될 때까지 찾아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건 유럽 아티스트들이 사용하고 있던 소재, 제스모나이트였다. 처음엔 석고라고 생각하며 영상을 봤었는데 소재를 소개하는 말을 듣는 순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제스모나이트. 궁금한 건 못 참는 나이기에 또 찾기 시작했다. 찾아볼수록 흥미로운 소재였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한 계정을 발견했다. 몇 년간 지켜보며 어떻게 구현해 내는지, 어떤 형태로 만드는지, 색감은 어떻게 쓰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제스모나이트로 만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었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그분께 연락을 했다. 배우고 싶다고.
그 길로 나는 제주에서 서울로 당일치기 견습생을 자처했다. 잔잔히를 오픈하기 전부터 나는 공방을 하면 제스모나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매력 있는 소재였다. 소재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구현하는 건 내 몫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나 누구도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소재로 택했던 제스모나이트.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제주 제스모나이트 공방하면 잔잔히를 떠올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