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꾸던 공간, 내 취향대로

by 이방글

2019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기, 내가 꿈꾸던 공간을 실현시켜줄 장소를 발견했다.


고립된 현실을 벗어나고자 도피성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던 날,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떠나는 비행기표를 찾아보았다. 그건 제주행 비행기. 급하게 금요일 연차를 쓰고 목요일 저녁 비행기로 나는 제주로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까지만 해도 속이 갑갑하고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무작정 떠났다. 착륙 전 하늘에서 바라보았던 제주의 모습에 갑자기 두근거리고 붕 뜬 느낌이 들었다.

[나 지금 설레는 건가?]


착륙 후 도착 게이트를 나선 순간 불어보던 습한 바람, 그리고 TV 속에서 보던 키가 큰 야자수들. 제주국제공항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문구. 낯설지만 안도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다. 제주라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제집 드나들듯이 제주를 오가기 시작했다.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1번은 꼭 제주를 갔다 왔었고, 여유로운 달에는 2번을 가기도 했다. 휴가도 제주에서 보내기를 반복했다. 힘든 시기에 내게 제주는 걱정 없이 무작정 찾아가도 되는 곳이었고, 한없이 걷다 보면 힘겨운 마음을 조금은 덜어내주는 존재가 되었다. 뚜벅이로 제주 한 바퀴를 돌았고, 나고 자란 창원과 자리 잡은 서울이 아니라면 나의 정착지는 제주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제주도 이주를 꿈꾸기 시작했다.


제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질 때쯤, 제주도에 TO가 생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당장 인사담당 선배에게 면담을 요청했었다. 제주에 자리가 난다면 지원해 볼 생각이라고. 깜짝 놀란 눈치인 선배에게서 확정은 아니지만 자리가 날 거 같다며,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그때까지 잘 생각해 보라는 걱정의 말을 듣고선 혼자 제주도로 갈 수 있겠다는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 이후부터 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동쪽으로 임장을 다녔다. 몇 년간 제주를 다니며 내가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곳이 동쪽 해안가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제주스러운 구옥들이 잘 보존되어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오름이 많이 있다는 게 내게 크나큰 매력적인 요소였다.


그렇게 나 홀로 이주를 꿈꾸던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사람이 나타났고, 우리는 함께 제주로 왔다.


나는 늘 동네 한가운데 큰 퐁낭(제주에서는 팽나무를 퐁낭이라고 부른다.)이 있는 구옥에서 내 공간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


2019년 어느 가을과 겨울 사이의 늦은 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심심한 찰나에 요즘 구옥은 시세가 얼마나 할까 궁금해 제주 오일장 신문과 부동산 앱으로 매물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제주스러운 돌담으로 둘러싼 구옥, 현재의 잔잔히. 나는 내일 당장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보자마자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카페들이 많은 해안가도 아니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다. 제주를 여행 다니면서도 살면서도 처음 들어보는 지명인 신엄리, 시골 마을 한가운데 있는 제주의 구옥이었다.


이제는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던 2024년 겨울, 셀프로 인테리어를 할 수 없으니 공간 기획과 설계는 내가 하겠다는 생각으로 또다시 찾아보고 알아보고 배우기 시작했다. 마감 소재부터 유리, 소재별 친환경 등급, 조도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선택한 나만의 조감도, 설계 도면을 완성했다.(이 과정은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하게 하려고 한다.) 인복이 많은 나는 주변 분들의 도움과 소개로 좋은 인테리어 대표님을 만나 내 뜻대로(99.9% 정도라 생각한다.) 나만의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동네에 어우러지며 제주스러움을 유지하되 나만의 감성이 녹아든 공간, 잔잔히. 감사하게도 애월 노란 지붕 카페로 잔잔히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옛것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 나를 녹여낸 공간, 애정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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