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이 조금 특이하다. 여태껏 살면서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성은 아주 흔하지만 이름이 특이한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었다.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겠지만, 초등학교 때 발표를 하거나 선생님이 낸 질문에 대답을 할 때 지목 대상이 되기 쉽다는 사실. 국어 시간에도 선생님 지목으로 읽기를 참 많이 했었고 수학 문제도 칠판에서 판서로 푼 기억도 많다. 어렸을 때는 특이한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도 바꾸고 싶으면 바꿔주겠다는 답을 했었다.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지나고 고학년이 되니 점점 이름이 좋아졌다. 친구들은 헷갈려 하지 않았고, 선생님들도 한번 들으면 잊지 않았다. 나는 이름과 찰떡인 인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점점 이득이 많아졌다. 칭찬을 많이 듣는다던가(이름이 예쁘다는 것과 얼굴과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 등등) 친구들의 부모님들께 신임을 쉽게 얻기도 했다.(긍정적인 느낌의 이름으로 인해) 좋은 점들이 많지만 가끔 나쁜 점이 있었는데, 나쁜 짓(통상적으로 부정적인 행동들을 포함한다.)을 못한다는 사실. 예를 들면 시험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지각을 한다거나 학생 신분으로서 일탈을 한다던가. 내가 하면 100% 들통이 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기 초반 인근 고등학교 축제가 있는 날, (중학교 때는 없었던 축제라는 행사로 인해) 들뜬 마음에 같은 반 친구들과 야자 땡땡이를 쳤다. 그날은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 친구들도 축제를 즐겼는데 다음날 교무실로 불려간 건 나였다. 전날 야자 감독이었던 다른 반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우리 반 대표로 불려갔다. 담임선생님께도 혼났던 난, 2연타를 맞고 패잔병처럼 쓸쓸히 교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급하게 에피소드를 마무리했지만, 그 당시 교무실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성실히 임했고(땡땡이는 내 사전에서 사라졌다.) 선생님들에게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딜 가나 내 이름을 들으면 예쁘다, 특이하다, 얼굴이랑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회에 나오니 더욱 실감이 났다. 흔하지 않은 이름으로 인해 협력사분들께 빠르게 인식이 됐고 정작 나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유관부서 사람들에게도, 협력사 담당자들에게도 나에 대한 인식은 내 이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름이 곧 나를 나타내는 나의 지표이자 브랜드라는 것을.
이름이 브랜드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내 이름을 떠올리면 누군가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의 일하는 스타일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할 테니 나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브랜드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더욱 신중을 가하게 되고 조금 더 고민하게 된다.
잔잔히 카페&공방 대표로 내 이름 석 자를 말하거나 문서에 작성할 때의 희열감, 내 이름을 걸고 고객에게 내는 제품, 강의, 글감 등 모든 행위에 대한 사명감과 무거운 책임. 그만큼 신중해지고 최선을 다하는 나지만 이름에 대한 무게감이 가끔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내가 만들어온 이미지이자 브랜드인 내가 사랑하는 내 이름. 오늘도 이름을 걸고 또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끊임없이 각인시키기 위해,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을 걷고 있다. 언젠가는 완성될 나만의 브랜드이자 나라는 사람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