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시골 강아지처럼 갑자기 들뜨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건 확률적으로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분지 동네에서 20년 넘게 산 내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국에 폭설이 내린다는 기상 뉴스가 반갑지 않았던 지난날, 내가 살았던 창원은(경남 지역) 눈을 아주 잘 피하는 지역이다. 서울로 상경할 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아주 작은 소망 하나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눈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설렘. 나중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지겹다고 느껴지겠지?라는 생각. 그땐 몰랐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서울 살이를 하면서 가장 들뜬 뉴스는 밤사이 눈이 내리겠다는 기상 뉴스였다. 다음 날 출근길을 상상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기대감과 설렘을 가득 안고 잠에 들곤 했다.
눈이 내린 뒤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눈을 구경조차 못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기상 오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적게 내려서 그 사이에 녹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강한 바람에 다 날아가 버렸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순진했던 시골 쥐였던 나. 눈은 내렸지만 눈을 볼 수 없었던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바로 제설 작업.
언덕 위 골목집에 살았던 난 그 점에 매우 놀랐다. 우리 집 골목 앞까지도 제설이 새벽동안 다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간혹 얕은 건물의 지붕 위에 쌓인 눈이 있다거나 가로수 주변에 쌓여(뭉쳐있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만) 눈인지 흙인지 정체 모를 눈덩이(?)를 보는 게 전부였다. 제설은 도대체 언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종종 할 때쯤 우리 집 골목 초입에 놓아져 있던 제설함을 발견했다. 사계절을 여러 해 사는 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나. 겨울이 오면 어느샌가 제설함이 자기 자리에 위치해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후 눈이 내린다고 하면 내일로 미루지 않고 바로 눈을 보러 나갔었다. 내리는 눈을 밟아 보고 만져 보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이 아니면 눈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 눈이 온다고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의 노고로 나의 아침 출근길은 늘 안전했으니까.
제주로 내려오고 나서는 도통 눈을 보지 못했다. 저 멀리 눈 쌓인 한라산은 겨울마다 볼 수 있었지만 정작 내가 사는 동네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해안가 마을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 전역에 폭설이 내린 적이 있었다. 우리 집 마당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으니 진짜 제주 전역에 내려진 게 맞다. 새하얀 눈을 보니 덩달아 나도 신났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신난 똥강아지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우리 딸. 말도 트이기 전인 아기가 창 너머 눈을 보더니 옷을 꺼내는 시늉을 한다. 아마도 옷을 입고 나가겠다는 뜻이겠지. 추운 겨울이라, 눈까지 내린 날씨라 감기라도 걸릴까 밖을 나가지 못했던 아이도 나도 눈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함께 옷을 여러 겹 껴입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가는 손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눈을 만져도 보고 던져도 보고 작은 눈사람도 만들어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딸을 위해 하얀 눈을 도화지 삼아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도, 물들이기도 했었다. 아이는 훌쩍 자라 그때의 기억이 흐릿해지거나 사라졌겠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걸.
어제도 예상하지 못한 폭설이 내렸다. 도로가 순식간에 하얀 세상이 되었고, 저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던 차는 바퀴가 헛돌고 갓길에는 체인을 차는 차들이 보이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눈에 제설 차량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위험해 보이고 모두가 조심스럽게 도로 위를 지나고 있었다.
어제의 애조로
조수석에 앉은 나는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고 겨울과 찰떡인 목소리로 노래하는 폴킴의 노래를 들으며 엉따를 하고 있으니 차창 밖 세상은 꼭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20년 넘게 눈을 접하기 어려웠던 나의 환상 속 상상의 나라에 도착했다는 걸 알려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