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했던, 순간의 시간

by 이방글

훌쩍 떠나는 일이 나에게는 일상과 같았던 지난날, 당연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 상황들과 여의치 않은 이유들로 인해 쉽지 않았다. 그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만난 지 열흘쯤 됐을 무렵 9개월 뒤에 함께 떠날 유럽행 티켓을 끊었었다. 대화 중 우연히 알게 된 여행을 가지 못했던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순식간에 비행기표를 끊어버린 그 순간까지 만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떠나려 했던 나라가 똑같았고 시기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해당 나라는 그 당시 내전으로 인해 여행 주의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보지 못한 상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찬 상태에서 급 마침표를 찍었었다. 잘 알지 못하는 외간 남자를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9개월 뒤에 우리가 어떤 사이일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해외여행을 함께 가겠다며 표를 끊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무슨 확신이었을까. 당연히 함께 갈 거라 생각했던 내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훌쩍 떠나는 게 당연했고, 생각이 들면 실행에 옮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분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과 열심히 달려왔던 사회생활을 잠시 멈춰야 한다는 현실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던 찰나,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가 멈춰버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생각보다 산후우울증이 덜 했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마음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공통 감정이라 타격감이 크지 않았다.


그 이후 생활 환경이 크게 바뀌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차츰 사라질 때쯤,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해제되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해외여행을 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던 난 속이 울렁거렸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내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버티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상황에 애써 넘겨보려 했던, 묻어두려 했던 감정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여의치 않지만 떠나보자는 그이의 말 한마디에 갑갑했던 가슴에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떠나는 날만 기다리며 열심히 나날을 살아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먼 여행을 떠났던 우리, 시작은 힘들었지만 여행을 하며 그 순간순간마다 '우리 원래 이랬었지', '그래 이거지'라는 감정이 떠올랐고 여행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마음이 누그러졌었다. 기약 없는 다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환기를 시켰다.


2년 만에 가게 된 여행,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오랜만에 함께 떠난 여행에서 미안함과 이 웃음소리를, 행복한 표정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감정들과 마주했었지만 지금이 가장 굳건하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도 떠남으로 인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훌훌 털어버리며 환기를 시켰듯이 이유 모를 마음속 응어리이자 갈망을 털어내야 비로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도 벌써 아는 모양이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더 웃게 해주고 싶고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마도 나보다 그이가 더 간절하게 느꼈을 테지만, 나도 못지않게 간절하다는 걸 알 거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순간이며, 가져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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