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향 친구가 제주로 여행을 왔다. 4년 만에 왔다는 친구는 이제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이 되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친구에게서 여전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을 보지 못했지만 마치 내일 보자며 헤어진 뒤 오늘 만난 거처럼 익숙한 느낌. 이런 걸 고향 친구라고 하는 건가?
친구는 카페를 둘러보며 나에게 물었다.
[인테리어 네가 다한 거지?]
놀란 나는 내가 기획하고 디자인했다고 답했다. 친구는 '역시'라는 말 뒤에 '아기자기한 게 너 느낌이 난다'라고 했다. 내가 아기자기한가? 속으로 갸우뚱했지만 이 말을 처음 듣는 게 아니다. 나와 어릴 때부터 알았던 친구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나는 아기자기한 사람이 아닌데 왜 다들 나에게 이 말을 하지?
아기자기하다
: 여러 가지가 오밀조밀 어울려 예쁘다.
: 잔재미가 있고 즐겁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어렴풋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밝은 걸 좋아한다. 여백을 좋아하지만 시선 끝이 닿는 곳에는 작은 디테일을 추구하는 편이다. 소품과 꽃, 진열하는 방식 또한 나만의 시선이 있다. 시간마다 빛이 오고 가는 길목에 반짝이는 소품 하나, 많은 것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눈의 피로감을 덜어줄 초록빛의 식물 하나. 나만 아는 나만의 디테일.
아마도 나의 세심함 한 스푼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기자기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갑자기 눈이 보고 싶어 눈을 보러 가자고 한 내가 낯설었고, 보고 싶었던 풍경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정도, 처음 느껴보는 또 다른 감격이 어색하기만 했다. 빠르게 인정했다.
[나 눈 좋아하네.]
평소에는 감흥도 없던 풍경에 울컥할 만큼 감정이 올라온다든지, 무심히 지나쳤던 모습이 어느 날 새롭게 다가와 머릿속에서 팡! 하고 터지는 감동을 준다든지. 요즘 부쩍 그런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이걸 좋아했었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내 스치듯 사라진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게 분명하니까. 애매한 감정보다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요즘, 시선이 다양해지고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던 내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꼈다. 달라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나 스스로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큰 틀은 그대로라고 느끼는 순간은, 오늘처럼 옛 친구들이 기억하는 나를 마주했을 때 여전히 나는 그때 그 시절의 나라고 느끼게 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은 나는 그대로일까, 다른 걸까.
궁금하다. 다른 이들이 기억하는 나는,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