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밀도

by 이방글

나에게는 10살 차이가 나는 오빠가 있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했을 무렵,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오빠의 방 안에서 들려오던 라디오 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DJ가 누구였는지,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을 틀어주었던 많은 날들이 기억난다. 스치듯 들리는 노랫소리를 들었던 그때부터였다. 내가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게.


그 시절 유행했던 노래들은 TV나 라디오에서 익히 들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찾기 위해 들을 수 있는 만큼 가득 담아 들었다. 그 당시 mp3로 다운받아 노래를 듣던 시절, 은색 아이리버와 줄 이어폰은 필수품이었다. 늘 지니고 다니며 노래를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는 시간이면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들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정확하지 않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싶어 우리 학년을 나타내는 핑크색 체육복을 뒤집어쓰고 몰래 들었었다. 체육복 상의는 모자가 달린 후드형으로 라디오를 듣기에 딱이었다. 그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속 여러 코너 중 하나인 사연이 채택된 학생의 반 전체에 간식을 쏘는 코너가 있었다. 간식을 받기 위해 사연을 써서 문자를 보냈던 시절, 나의 소중한 알이 많이 사라졌었다.(청소년 요금제에서 알이란 포인트와 비슷한 개념, 돈의 단위인 '원'대신 '알'로 통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때, 그날의 감정이 소중하게 남은 건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겠지.


라디오와 노래를 들으며 자란 나는 생각보다 노래를 듣는 시대의 폭이 넓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던 탓에 다양하게 많이 들었다. 어릴 땐 그저 '듣는' 일에 집중했다면 성인이 되고 사회라는 세상에 발을 디디며 느꼈던 희로애락 덕분에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듣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경험에 따라 같은 노래를 들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의 밀도는 천차만별이었다. 흥미로운 빼곡함이랄까.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고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내게도 한 번 들어보라며 추천해 줬던 노래가 있다. 노래를 듣고 난 뒤 그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멜로디가 좋아 다른 곡들을 찾아보고 들었던 기억만 있다. 여전히 그 노래를 듣고 있고, 새로 나오는 곡들을 찾아 듣는다. 그러다 늘 듣던 노래가 갑자기 선명해질 때가 있다. 가사가, 멜로디가, 여백이 주는 감정이 나의 감정과 맞닿게 되는 순간, 나의 세계가 노래 덕에 더욱 웅장해진다. 감정까지 격해져 마음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노래가 주는 힘은 굉장하다. 그때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나기도 하고, 이 순간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듣고 있는 와중에 2018년에 발매한 한 노래가 나를 다독여준다.


진한 회색빛깔로 가득 찼던 무거운 안개가 조금은 걷히고 촉촉한 흐린 날이 되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내쉰 두 숨에 차가운 공기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살아있음을 느낀다. 멀게만 느껴졌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함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찬찬히 느껴본다. 지금 이 순간을.


오늘 감정의 밀도는 몽글몽글과 빽빽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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