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이방글


오랜만에 나선 산책길. 미로 같은 우리 동네를 걸을 때면 발길이 닿는 대로, 눈길이 가는 대로 정처 없이 걷는다. 방향치인 나는, 길을 걸으며 한눈팔 기 일쑤라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네이버 지도 없이는 제대로 갈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유일하게 마음 놓고 지도도 보지 않고 걷는 산책길.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걸을 때면 스스로에게 놀랄 때가 있다. 7년째 살고 있는 동네지만 한 번도 오고 가지 않았던 새로운 골목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간 산책이 얼마 만이던가. 바다 곁에 찬란하게 핀 노란 유채꽃밭이 아른거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왔다. 유채꽃을 보러 가는 길목에 새로운 골목을 발견하기도 하고, 길고양이 친구들을 여럿 만나기도 했다. 날씨가 더 청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날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았을 텐데. 옷깃을 여미며 걸어가는 짧은 그 순간에도, 여태 가지 않고 버티는 늦겨울의 끝자락이 잠시나마 느껴졌다.



오랜만에 걷는 걸음에 설렘이 한 스푼 더해졌다. 익숙한 골목이 나오고, 대문마다 걸려있는 말라버린 작은 늙은 호박들. 왼쪽 골목 모퉁이를 지나면 안쪽 좁은 골목길에 핀 동백꽃과 댕유지 나무, 오른쪽에는 대파를 심어 논 작은 텃밭이 보이면 곧 유채꽃밭에 도착한다. 저녁에는 동네 삼춘들의 트럭이 삼삼오오 모여 가득 채우는 작은 공터이자 바닷길 바로 앞 유채꽃밭. 저 멀리 보이는 파란 지붕 집과 노랗게 핀 유채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볼 때면 '이게 제주다운 풍경이지'라고 생각한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살랑이며 흔들리는 유채꽃은 바람에 몸을 싣고 춤을 추고 있고 저 멀리 파란 지붕은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보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그토록 원했던 풍경이 내 곁에 있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나의 일상이 된 제주가.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훌쩍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제주의 풍경은, 그런 나를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었으며 다독여주는 따뜻한 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에, 내가 좋아하는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 감사했던 하루. 마음에 가득 채우고 또 나는 힘차게 일상을 살아간다. 제주에서.



또 산책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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