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내음

by 이방글

비가 내리기 전, 코 끝에 나는 흙 내음으로 먼저 알아차린다. 아, 곧 비가 오겠구나.

공기의 습도가 높아지고 짙은 흙 내음이 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나는 흙 내음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날도 좋아한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도, 내 몸을 투닥투닥 두드리는 굵은 빗방울도, 어두운 방 안에서 투둑투둑 들리는 빗소리도.

어릴 때부터 '냄새'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냄새 건, 그렇지 않은 냄새 건.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불교였다. 할머니의 영향이었는지, 원래부터 믿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자주 절에 갔었고 사월 초파일이면 염원을 담아 연등을 달기도 했다.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절이지만 향 내음은 강한 기억이자 기록으로 내게 남아있다. 마음이 진정되고 차분해지는 내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부정적인 느낌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아이러니하다.

사람에 대한 기억도 그 사람의 내음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향수나 화장품 냄새가 아닌 그 사람만의 체취로 내게 각인된듯한 느낌이다. 인위적이지 않았고 어디선가 맡아보지 못한 그러한 내음. 대부분 긍정적으로 인식되었고 가끔 낯선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나면 그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던 내음이 또다시 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의 내음도 좋다. 봄바람에 실려온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 여름밤이면 상쾌하게 느껴지는 풀 냄새, 가을 저녁노을이 짙어질 때 나는 묵직하게 바닥에 깔리는 냄새, 이른 새벽에 뾰족하게 다가오는 날카로운 냄새로 겨울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형체가 없는 향기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스치듯 불어온 내음에 그날의 기억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불현듯 잊고 지내던 사람이 기억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나의 영혼이 그 장소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비가 오는 오늘, 태풍 찬홈이 강타했던 그 날로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비릿한 물 내음, 강한 바람에 실려온 차가운 칼날 같은 공기. 분명 비가 왜 옆으로 오냐며 투덜대며 마트를 가던 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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