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푹 빠져 여행을 다녔던 시절, 나를 제주로 오게끔 사로잡았던 건 바로 동백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내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 보통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피는 꽃들은 있지만 겨울에 피는 꽃은 드물었다. 동백꽃을 보기 전까지 겨울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나.(꽃집에서 볼 수 있는 절화용이 아닌 자연 그대로에서 피어나는 꽃) 겨울 제주에서 마주한 동백꽃을 보고 나는 꼭 제주로 오리라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계절 내내 꽃이 피고 지는 곳은 내게는 무릉도원이었으니까.
여행 초반에는 겨울 제주를 만끽하기 위해 카멜리아힐이나 휴애리 같은 관광지로 동백꽃을 찾으러 다녔다. 그 후 동백으로 유명한 마을들을 탐방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누구나 알법한 알려진 동백 군락지로 찾아다녔다. 제주로 이주를 하고 난 뒤 겨울이면 동네에 핀 동백꽃을 보러 가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동백나무숲을 가기도 한다. 그저 일상 속 한 장면처럼,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제주에서 본 동백꽃은 유달리 붉은빛이 선명하다. 따뜻한 기후와 높은 습도가 더욱 붉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붉은 동백꽃은 제주의 현무암 돌담과 어우러져 더욱 선명해 보이고, 주황색 귤이 주렁주렁 달린 귤밭의 방풍림으로도 잘 어우러진다. 색감이 없는 계절 겨울에 만나는 선명한 붉은빛 꽃.
뚜벅이었던 시절, 제주스러운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다 보면 마을의 경계나 귤밭의 방풍림으로 동백꽃을 심어논 곳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게 아니라 옛 선조들이 심은 동백 숲이었다. 제주는 왜 이렇게 동백꽃이 많을까. 예전에는 동백 씨앗에서 짜낸 동백기름으로 머릿기름이나 등불 기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동쪽 한마을에는 수호목으로 500년이 넘은 동백나무가 있기도 하다. 단순히 꽃나무가 아닌 생활에 필요한, 삶과 연결되어 있는 나무로 사람들 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동백꽃은 다른 꽃과 달리 꽃잎이 흩날리지 않고 꽃 통째로 툭 떨어진다. 고개를 떨군 모습처럼, 애잔하면서도 강렬하며 슬프지만 아름답다. 동백의 꽃말은 '겸손한 아름다움', '변치 않는 사랑', '굳은 의지'로 제주의 삶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다. 제주의 큰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꽃으로도 동백꽃을, 그날을 잊지 않으려 기억하는 상징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제주의 역사를 알고 바라본 동백꽃은 그저 꽃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제주 그 자체로 여겨진다.
차디찬 겨울바람에도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의 꽃. 애잔하게 시린 마음을 다독여주는 결의에 찬 빛깔. 어떠한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와 당당한 자태. 고된 시련을 꿋꿋하게 참아내고 따뜻한 봄날, 그제야 엄마의 품으로 안기는 꽃. 내가 바라본 제주의 동백꽃이다.